우리나라에 보훈제도가 시작된 후 보훈복지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되었다. 이는 우리 보훈제도가 국가보상과 사회보장의 양면성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전쟁의 그림자로 국가 체계와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보훈은 각종 수당으로 대표되는 보상정책과 함께 선제적으로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해 왔다. 구체적으로 보면, 1952년 전몰군경 유족과 상이군경을 대상으로 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1961년 국립원호병원, 1963년 종합원호원이 설립되는 등 촘촘한 의료·복지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보훈’의 의미와 가치가 다각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며 국민과 사회의 통합 기제로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훈 복지분야의 경우 최근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가 보편화되고 질적 수준이 점차 상향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보훈복지가 일반 사회복지정책에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등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법률, 행정, 전문성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보훈복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뇌와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인 듯하다. ‘보훈복지란 무엇이며, 사회복지와 어떤 점이 다른가?’ 이러한 원론적이지만 핵심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때 보훈복지는 ‘사회복지 플러스 알파(+α)’라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복지에 담긴 ‘예우와 존경’

유공자 영예로운 삶에 기여

사회복지와 보훈복지는 생성 배경 자체가 엄연히 다르다. 사회복지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빈곤 문제가 사회화되며 개인의 빈곤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보훈복지는 근대국가 형성 이전의 공동체 의식에서 출발해 국가의 당위적 의무이행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보훈복지는 국가보상론에 기반을 두고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써 단순한 생계유지를 넘어 영예로운 생활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보훈복지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에 따른 보상과 상징성, 국가유공자의 권리성 등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보훈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보상과 복지는 단순히 일반 국민 전체에게 주어지는 복지의 개념과는 다르고, 또 다르게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보훈복지에 ‘예우’와 ‘존경’의 개념이 충분히 녹아 들어있지 않다면 단순한 일반 복지의 한 부분으로 취급당할 것이고, 이는 국가보훈처 조직의 목표와 보훈의 정책목표에도 부합하지 않게 된다. 보훈복지는 단순히 사회복지의 범주 안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보훈’의 성격을 강조하여 국가유공자들의 영예로운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원화된 보훈의료와 복지

각 서비스의 유기적 연계 시급

현재 보훈의 3대 기둥인 독립, 호국, 민주 유공자들의 고령화가 지속되고, 신규 국가유공자의 등록 비율이 낮아 보훈대상자의 고령화율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전체 보훈대상자 중 70대 이상의 비율이 70%를 넘어섰고, 향후에도 후기고령자의 급속한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국가보훈처와 보훈공단에서는 그동안 이러한 고령화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온 바 있다. 의료와 요양 시설에도 많은 투자를 했고, 각 지방 보훈관서를 통해 심리상담과 재가복지서비스를 시행하는 등 제도적 시스템도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은 더 치밀하고 체계화된 대책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되면 생활습관병이나 암, 치매, 만성질환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의료 수요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돌봄 서비스의 수요도 높아지게 된다. 고령층의 증가는 의료, 요양, 예방과 같은 전문 서비스와 일상생활의 기반이 되는 주거 환경, 생활 지원 및 복지서비스 등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보훈 관련 모든 자원을 연계해 ‘가능한 한 자기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오래도록 자택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의료, 복지의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국가보훈처와 보훈공단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보훈의료와 복지, 요양과 재가 서비스의 유기적인 연계와 통합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훈복지의 미래상을 명확하게 그려야 한다. 단기 목표에만 집중하다 보면 큰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고, 눈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복지에 대한 평가 역시 양적 결과 지표에만 치중하다 보면 진정으로 국가유공자들의 삶의 질과 연관되는 정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게 될 수 있다.

현재 눈앞에 드러난 시급한 문제 해결 위주의 사후적 정책에 적당히 타협하기보다는 흔들리지 않을 보훈복지의 최종 비전을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이를 위한 전략적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의료와 복지가 적절히 융합된 형태의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 오늘의 상황은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의료의 역할은 질병이나 요양 상태에 빠지지 않고 건강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생활습관병 예방이나 치매, 요양 예방과 같은 보건 분야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보훈의료 역시 신체 부위에 맞춰 ‘치료하는 의료’가 아니라 ‘생활을 지탱하는 의료’로 패러다임을 확장하여 보훈정책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현재 보훈 의료와 복지 시스템으로는 대응하지 못하고 지역 내에 머물고 있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U-건강관리 등 정책도입 필요

‘사회복지 플러스 알파’ 실현을

다음으로 보훈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존재하는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 여러 선행연구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산간오지 등의 국가유공자에 대한 서비스 사각지대를 지적해 왔다. 원격의료지원을 위한 유비쿼터스 건강관리(U-Health Care System), 소규모 다기능의 지역 밀착형 시설 도입, 화상 상담 서비스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됐지만, 여전히 접근 취약 지역에서는 보훈 관련 서비스 이용이 쉽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의료와 복지 연계나 사각지대 해소 등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보훈복지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첫째, 보훈 리빙랩(LivingLab)이다. 복지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살아온 집에서 노후 보내기(Aging In Place, 나이가 들어도 요양원이나 병원 등으로 주거지를 옮기지 않고 살아온 집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이 주목받고 있다.

리빙랩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적의 대안을 찾아낸다는 일상생활의 실험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보훈의료와 복지에 IT기술을 조합하면 지역 내의 국가유공자에게 건강지원과 24시간 돌봄으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의 기본이 될 수 있다. 국가유공자들이 오래 살아 익숙한 자택에서 건강하고 영예로운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개인맞춤형, 여러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맞춤형 등의 형태로 다양한 보훈리빙랩의 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최근 노년학 분야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노화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제론테크놀로지의 도입이다.

제론테크놀로지는 노년학(Gerontology)과 공학기술(Technology)을 합성한 단어로 고령자를 위한 생활 자립지원 기술을 의미한다. 신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고령자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주변 환경을 개선하여 고령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기술로 허약해진 신체 기능을 인공적인 기계나 환경 개선을 통해 지원하는 배리어 프리(물리적·제도적 장벽 허물기, barrier free) 개념과도 이어진다. 보훈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장구(보철구)와 주거개선 사업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노하우를 국가유공자의 고령화와 접목해 생활하기 편리한 환경 조성, 삶의 질 향상과 돌봄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다시 시계를 되돌려보면 보훈제도가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를 이끌어왔던 것처럼 보훈대상자의 고령화는 보훈이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을 이끌어나갈 선도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국가유공자라면 누구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사회복지 플러스알파(+α)’를 실현할 수 있다면 보훈복지정책의 사례가 우리나라 복지정책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미 갖추어진 의료와 요양, 주거 및 재가 서비스 등 최고의 인프라를 발판삼아 이제는 복지 트렌드와 국가유공자의 요구(Needs)를 정확하게 맞춰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이영자 사회복지학 박사, 전 보훈교육연구원

국가보훈처 나라사랑·보훈교육연구원 공동기획

 

초고령 국가유공자를 위한 최선의 예우 ‘요양서비스’가 있습니다

보훈복지 - 요양과 시설 지원 현황

참전유공자 대부분이 초고령에 들어서는 현재 보훈복지의 가장 커다란 관심과 역점사업의 하나는 요양서비스이다.

국가보훈처는 노인성 질환 등으로 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편안한 노후생활 지원을 위해 전국 7곳에 보훈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수원과 광주에서 처음 문을 연 보훈요양원은 2009년 김해, 2011년 대구, 2012년 대전, 2015년 경기 남양주, 지난해 강원 원주요양원을 개원했다.

보훈처는 미설치 권역 수요와 수도권 장기 입소대기 해소를 위해 보훈요양원 추가 건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며 올해는 전북권 보훈요양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건립 중인 전북권 보훈요양원은 353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2018년에 착공했으며 올해 12월 개원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는 수도권 보훈요양원 입소대기자 해소를 위한 추가 건립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는 2월 말 기준 보훈요양원 입소대기자 1,648명 중 수도권 대기자가 1,287명으로 전체의 78.1%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수도권 수요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내년도 수원보훈요양원 증축과 신규 수도권 보훈요양원 신축을 위한 예산 확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외에도 보훈요양원과 민간요양 시설에서 생활하는 국가유공자에게는 생활수준을 고려해 시설 이용에 따른 본인부담금 중의 일부(대상별로 40%, 60%, 80%)를 지원한다. 또한 무의탁 고령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위해서는 경기 수원에 보훈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원주요양원.
대구보훈요양원의 비대면 면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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