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낮동안 햇빛이 여름의 그것처럼 따사로워 서남 해역 작은 섬 추자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선원 부족으로 쩔쩔매는 어민들의 멸치잡이에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자도는 예로부터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이다. 멸치잡이는 여름 한 철, 그것도 야간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퇴근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쁜 일손을 도우려 여유롭게 승선했다. 멸치잡이 일은 8명 이상이 팀워크를 이뤄 야 하므로 한 명이라도 부족하면 출어를 할 수 없다. 섬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총 동원됐기에 멸치잡이 철이 되면 서툴기 이를 데 없는 나에게도 승선 요청이 왔다. 퇴근 후 밤에 잠 몇 시간 덜 자면 어민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요청을 거절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본격적인 조업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승선했다. 일은 서툴러도 성실한 선원으로 소문나 선주들이 선호하는 인기 선원이었다. 집어등 불빛을 본 멸치 떼가 모여들고 대형 포충망처럼 생긴 그물이 바다에 내려지면 이물 사공(배의 앞머리 부분에서 집어등 잡이)은 집어등을 그물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멸치 떼를 그물 안으로 유도한다. 그물 사공들은 잽싸게 그물을 조이고, 조여진 그물은 시소처럼 걸쳐진 쳇대를 눌러서 그물을 들어 올리게 된다. 내가 맡는 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쳇대 사공이다.

조업이 끝나면 배가 물양장에 정박하고 이어 분배가 시작된다. 분배방식도 독특하다. 처음에는 큰 그릇으로 분배를 하다가 양이 줄어들면 점점 작은 그릇으로 바뀐다. 원시적인 분배 방법이면서도 대단히 공정하다. 모두가 ‘승복’할 분배방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력이었지만 여러 해 동안 선원이 부족한 시기에 멸치 배 예비 선원 생활로 어민들의 어획고를 올리는 데 보탬을 주었던 추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당시에는 꽤나 고된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참 즐거웠던 시절’ 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젊지도, 추자도처럼 급히 사람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버릇처럼 지역사회에 부족한 예비 선원 역할처럼 봉사할 곳이 있을까 돌아본다. 지금의 상황과 내 모양대로 필요한 나의 쓰임새를 여전히 기대해 본다.  

김일태 육군 대위로 전역해 해군에서 예비군 지휘관으로 일했으며, 해병대에서 정년퇴직했다.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됐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따뜻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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