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절정기에 달했을 때 하루 7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당시 대구는 물론이고 전국은 충격에 빠졌다. 대구 최대 중심가이자 번화가인 동성로에 인적이 끊어지고, 전국 3대 시장인 서문시장이 시장 개설 이래 최초로 일주일간 전체 휴점을 하고, 시민들은 공포 분위기 상태에서 집콕(집에 콕 박혀 나오지 않는 상태)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의료진이 몰려오고 119구급대원들이 지원을 왔다. 코로나 대응 총력전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자원해온 의료진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호텔이나 여관방을 통째로 내어주는가 하면 철저한 위생관리로 급식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급증했다.

아내도 우리도 뭔가 도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영양가 있는 식자재를 보내고 싶어도 어디에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나는 기부금으로나마 도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어렵게 사는 분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폐지를 팔아서 모아둔 돈을 기부금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통장을 확인하니까 100만 원이 넘었다. 적은 금액이지만 100만 원을 며느리 계좌로 송금하고 대구 코로나 치료지원 의료진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의료진에게 직접 기부할 방법이 없다는 연락을 받고 그렇다면 대구지역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공동모금에 지정 기부를 해달라고 전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들과 딸도 부모를 따라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기부에 동참했다. 모두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뜻 기부에 동참해준 자식들이 기특했다. 코로나19가 국가적 재앙이었지만, 코로나가 이어준 가족의 이심전심이었다.

정기 기부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내가 기부하던 회원 번호를 최근 아들에게 승계했다. 유산 상속 대신 기부금을 상속하는 것이 내심 미안했지만 웃으며 받아주는 아들이 고마웠다.

이제는 백신접종으로 국민적 재앙인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길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온 국민이 각자의 생업을 정상적으로 영위해 나가기를 기원하며 마스크 없는 새로운 봄날을 기다린다.

김일태 육군 대위로 전역해 해군에서 예비군 지휘관으로 일했으며, 해병대에서 정년퇴직했다.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됐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따뜻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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