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국립대전현충원. 장병길 주무관이 비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드넓은 대전현충원 묘역에 흰 눈이 쌓여 장관이 펼쳐진 가운데, 묘소를 누비며 비석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이가 있다. 반듯한 비석 위에 선명한 글자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비석을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 담겼다.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과 장병길 주무관(35)은 지난해 비석건립 업무를 담당하며 빛바랜 비석을 재정비했다. 1980년대 문을 연 대전현충원. 40년의 세월 앞에 몇몇 비석의 글씨도 희미해지자 비석건립을 맡았던 장병길 주무관은 흐려진 비석들을 찾아내 다시금 국가유공자의 자랑스러운 이름이 빛날 수 있도록 글씨를 채워 넣었다.

전체 면적 약 330만㎡, 총 9만여기의 비석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국가유공자를 향한 예우의 기본이라 생각하며 꼼꼼하게 살폈다.

또 그는 매년 4,000~5,000여명의 비석을 건립하는 일을 담당하며 비석이 보다 빠르게 제작될 수 있도록 내용 확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일도 추진했다. 덕분에 2주 정도 걸렸던 기간을 1주 이내로 단축했고, 올해는 6~9주 정도 걸리던 비석 제작 기간을 4주~5주로 줄이기 위해 일 처리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제가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저 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아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제가 한 일은 매일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해내고, 어떻게 하면 국가유공자들을 더 예우해드릴까 고민하는 동료들을 따라 한 것이 전부입니다. 든든한 보훈인으로 선정됐으니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그는 보훈처 공무원이 되기 전, 자세부터 남달랐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자세히 알고 싶어 관할 보훈청에 견학을 요청했다. 덕분에 막연히 알고 있던 국가유공자가 어떤 분들인지 자세히 알게 됐고, 자신의 외할아버지께서 6·25전쟁 참전 공상군경이었다는 의미도 새삼 명확하게 알게 됐다. 국가유공자가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 보훈의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그는 부산지방보훈청 근무 당시 1년에 한 두 번씩 생존 애국지사의 댁을 방문해 안부를 전하곤 했다. 대전현충원으로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사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이후 대전현충원에 모셔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안장식에 참여했다.

“어르신과 깊게 대화를 해보진 못했지만 반갑게 맞아주시던 지사님의 얼굴과 목소리,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굳게 손을 잡아주셨던 순간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가끔 국가유공자 안장식의 진행을 맡기도 하고, 안장식에 참석해 슬픔에 찬 유족들과 함께 애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전현충원’이라는 다섯 글자가 보훈가족에게 큰 자부심이자 명예라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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