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내가 맡게 되는 업무가 ‘보훈정신 계승’ 업무라는데, 내가 무얼 해야 할까?”

작년 3월, 길다면 길었던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앞두고 있던 내가 남편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의 업무 공백 그리고 ‘보훈정신 계승’이라는 추상적 단어 앞에서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해내야 할 것만 같은 막막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의 울림이 있다면 그게 바로 진짜 보훈정신 계승이지”라며 격려해 주었다.

업무를 맡아 현장에 나가면서 ‘보훈정신 계승’이라는 일의 내용에 대해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작년 3·1독립운동 100주년,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지나왔다. 긴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그 시절을 겪어낸 분들이 우리 곁에 많이 남아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세대들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를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독립, 호국, 민주가 살아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국가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는 것이 점점 내 마음속에 뚜렷해졌다.

일을 하면서 미래세대와 함께 많은 보훈 행사를 진행했다. 학교 내외 벽에 나라사랑과 보훈을 그림으로 새긴다면 재학생과 앞으로의 입학생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보훈정신을 알리고 나라사랑 의식을 고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행사를 기획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교에서 신청이 들어왔고 7개교와 함께 행사를 완료했다.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을 정성스레 그리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니?”

“네 선생님, 이렇게 잘 보이게 그려두면 잊어버리지 않잖아요.”

한 번은 중학생들을 데리고 국가유공자 명패를 달아드리는 행사를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국가유공자 어르신께서는 거동이 힘드셨지만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셨고, 우리들은 아파트 입구에서 연습했던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켜주신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분명히 아파트 입구에서는 재잘재잘 개구장이였던 아이들이었는데 국가유공자 어르신 앞에서 그 말을 외치려니 목이 메고 눈물이 났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선생님, 왜 눈물이 난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났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 안에서 나라사랑의 마음이 커가고 있으리라.

이 어린 학생들의 말들이, 그 날의 남편의 대답과 겹쳐 들렸다. ‘한 사람에게라도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면 그게 진짜 계승이지.’ 그 마음들이 친구에게, 형제자매에게, 자식에게 이어질 것이다. 내가 오늘 했던 행사들이 작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보답하는 길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갔으리라 믿는다.

강자연 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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