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연구는 이제 그간 많이 다뤄져왔던 민중, 마을주민 등 아래로부터의 시선 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주체의 시선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즉 권력, 재산, 거주지, 이념, 성, 나이에 있어 다양한 주체가 6·25전쟁을 어떻게 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생활과 밀착된 문제를 접하는 구체적 느낌에 주목해 어떠한 감각과 감정들이 ‘전쟁’이라는 인상을 구성했는지 보고자 했다.

이러한 감각과 감정은 한국인의 뇌리와 몸에 깊숙이 자리 잡아 그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무의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쟁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생사의 문제이며 이보다 더 엄중한 것은 없다. 따라서 한국인의 전쟁에 대한 시선을 다루되 더 다양한 주체, 감각과 감정, 절박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그동안 크고 추상적, 이론적인 주제에 집중했던 6·25전쟁에 대해 작고 구체적이고 생생한 일상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의 시선을 전해준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역사의 정당화 내지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최소화하고, ‘사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논문을 통해 한국 국민에게 비친 전쟁을 상세히 살폈다. 특히 6·25전쟁을 겪은 이의 감각과 감정 등 직접적 경험에 집중해 보았는데, 이는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들에 대해 이념이나 이론의 틀로 미리 검열이나 재단하지 않고 그 사건의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 방식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한반도는 이데올로기적 전쟁터이며 또한 실제 전쟁터였지만 6·25전쟁에 놓인 한국인 중에 특정 이념을 신념으로 가진 이는 드물었으며 오로지 살기 위해 태극기, 인공기를 다 같이 준비하며 국군이나 인민군이 올 때를 대비해야 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은 6·25전쟁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부는 무능하고 도피하기 바빴다. 그 결과 인민군 점령시기 한국인은 협조하거나 학살되거나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행위로 수복 후 국군이나 우익에 의해 희생돼야 했다. 1·4후퇴 때 또 같은 경험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러는 와중에도 삶은 지속돼야 했고 또한 여전히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배려 등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 난리 중에 약탈과 같은 이야기가 별로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쌀을 이고지고 피난 다녀도 그것을 빼앗겨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찾기 어려웠다. 과거 3·1운동을 비롯해, 4·19, 5·18, 6월항쟁 등 국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은 있으나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약탈과 폭력이 드문 것은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쟁과정에서 그것을 무색하게 하는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 것은 여전히 우리가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나미 한서대 교수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