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인 김천시 증산면에는 옥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주소가 김천시라 얼핏 들으면 트인 곳 같지만 실은 지난날 금릉군으로, 시골 가운데서도 깊은 산골마을이다.

어쩌다가 고향에 한 번씩 가게 되면 그 마을 앞을 지나게 된다. 이웃 마을이란 것만 아니면 다른 타향의 낯선 마을과도 하나 다를 게 없는 그런 마을 입구 이정표 옆에 조그만 비석하나가 서있다. 허리춤에 못 미치는 나지막한 크기인데 고향을 수시로 다니면서 그 앞을 여러 번 지나갔지만 거기에 그런 비석이 서 있는 걸 몰랐다. 올 봄 나는 친구들과 같이 그 마을 모퉁이를 걷다 처음으로 거기에 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비석에는 ‘국가대표마라톤 감독 정봉수 기념비’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정봉수 감독의 일대기가 새겨져 있었다. 동향출신이니 한 번쯤은 이름이라도 들은 사람일 텐데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다만 비문을 다 읽고 난 뒤의 ‘정봉수’란 이름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만 떠오를 뿐이었다. 비문에는 황영조와 이봉주를 감독했던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문득 교과서에 나온 미국 소설가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어니스트가 자기 마을 뒷산에 사람얼굴 형상을 한 바위얼굴을 보면서 자기의 꿈을 키운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나중에 그가 명사가 된 뒤, 그 바위얼굴이 자기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젊은이들한테는 포부를 갖게 하는 희망을 심어준다는 이야기다.

황영조와 이봉주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알려진 체육영웅이다. 마라톤에서는 하나의 전설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런 선수가 이 지방에서 태어난 정봉수라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산골 마을사람들로서는 큰 자랑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봉수 감독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까. 묵묵히 제자를 키워낸 그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의 노력은 빛을 발한다. 스승의 힘은 아는 사람만이 가치를 아는 영역이 아닌가.

새삼 바로 이웃 마을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아마 그 마을로서는 엄청나게 경사스럽고 널리 알리고 싶었던 일일 것이다. 기념비를 세울 즈음에도 마을이 크지 않았기에 마을 주민들이 비를 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의 자긍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나는 다시 그 비석을 보면서 ‘큰 바위 얼굴’을 그려본다. 누구든 이 세상을 어떠한 모습으로 다녀갔다는 걸 남겼다는 것은 자신한테는 물론 후인들에게 존경하고 우러러 볼만한 인물이 됐다는 것 아니겠는가.

꿈같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 마을 입구에 내 이름이 담긴 저런 비석이 하나 세워질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일을 했나,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장진수 6·25전몰군경 유자녀. 오랜 기간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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