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중국의 충칭, 이역만리 먼 땅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조직, 광복군이 첫 시작을 내디뎠다. 무력을 갖춰 일제에 맞서 민족해방을 목표로 달렸던 젊은 청년들은 2020년 이제 10여명만이 남았다. 이들은 오늘까지 한국광복군동지회라는 이름으로 굳건한 광복의 의지를, 기개를 이어왔으며, 그 중심에는 한국광복군동지회장 김영관(96세) 애국지사가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년 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한국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이자 오늘날 국군의 뿌리입니다. 조국광복을 위한 광복군 정신은 8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의 민족정신 안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열여섯, 열일곱 창창한 미래를 꿈꿀 나이에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몸을 던졌던 청춘은 어느덧 아흔여섯의 노인이 됐다. 김 회장은 그러나 80년 전 타국의 땅에서 광복군에 입대하던 순간을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44년 경성사범학교 재학 중 일본군 강제 징집 통지서가 날아들자 그는 고민 끝에 입영에 일단 응한 후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그는 일본군이 주둔한 최전선인 중국 저장성에 배치됐고, 함께 탈영할 동지들을 모아 탈영을 감행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닳은 옷깃에 먼지를 뒤집어쓴 몰골, 이제 막 소년티를 벗어난 청년들은 하염없이 걸었다. 손끝 발끝은 형편없이 곪았고 식사를 못해 야윈 얼굴이지만 눈빛은 굳은 의지로 형형히 빛났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나라를 빼앗아간 일본의 군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의 임시정부로 가야겠다, 광복군에 합류하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광복군에 처음 도착해서 본 태극기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처음 소리 내 불러본 애국가도 생생합니다. 제대로 된 군복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했지만 그런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광복군으로서의 자부심 하나로 훈련에 임했고 제1지대 제2구대에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동포들의 염원과 의지는 ‘독립’과 ‘광복’으로 돌아왔다. 어언 세월은 벌써 75년이나 흘렀다. 그리고 올해로 광복군 창설도 80돌을 맞았다.

김 회장은 광복군동지회를 통해 독립정신과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고 후대에 계승하고자 쉬지 않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는 올해는 특히 감회가 남다르다.

“나라를 잃어보고,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지킨 경험이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대가, 동지들이 맨손으로 일궈내 이제는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지만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통한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는 데 무관심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분열과 부패를 경계하고, 국제 정세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는 독립유공자이자 6·25전쟁 참전유공자로 지금도 민족의 미래와 평화·번영을 위한 행보를 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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