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시간으로 보면 화려한 꽃은 그저 열매를 맺기 위해 벌과 나비를 부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모든 식물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시간은 열매의 시간이고 꽃이 지고 누구의 눈길도 머물지 않는 것은 나무나 꽃에게 오히려 다행인 일이다. 눈에 띄어 섣부르게 익지도 않은 열매가 꺾이지 않으려면 누구의 시선도 끌지 않는 게 외려 더 안전한 일일 테니까. 꽃이 지고 아무도 봐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열매의 시간이 온다.

(‘숲에서 한나절’, 남영화, 남해의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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