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영원에서 태어난 채원개 선생은 소학교 졸업 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4년간 복무하며 군사학을 배웠다.

1919년 선생은 고향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다가 탈옥해 북만주로 가던 중 대한독립단 조맹선 총단장인을 만나 대한독립단 군사교관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1921년 통의부 대표로 상해로 파견돼 국민대표 회의에 참석하고,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다. 이어 1923년에는 한국노병회 특별회원에 선임됐고,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해 중국 군벌 내전에 참여해 실전 경험을 쌓았다.

1925년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 주만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돼 임시정부 대표 자격으로 만주지역에 파견됐다.

1930년 중국군 59사 작전참모를 맡았고, 1932년 상해사변을 계기로 일본의 대륙 침공이 본격화된 후 중국군 독립 제4사 참모장을 맡았다.

1940년부터 광복군에 합류해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1944년 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활약했다. 채 선생은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후 제3여단장, 제2단장을 역임한 후 준장으로 전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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