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낳고서 문턱을 알았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가 방문 문턱에 걸려 넘어진 다음에야 나는 문턱이 높다는 걸, 아니 문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낮은 문턱이 누군가에겐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 35년이 걸렸다.

이제 내 아이는 더 이상 방문 문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더 높고 험한 문턱이 내 아이를 가로막고 넘어뜨릴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와 길을 걸을 테다.

손을 잡고 문턱을 넘을 테다.

더는 문턱을 넘을 기력이 없는 나에게 내 아이가 손을 내밀 때까지.

(손민호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칼럼 ‘분수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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