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하나 되어 함께 사는 ‘대동세상’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하면 대규모 시위와 폭력적 진압, 도청 앞의 시신, 마지막 진압작전,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당시의 광주는 달랐습니다. 계엄령을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시위로 나타났고, 계엄군이 물러난 다음에는 함께 수습을 논의하면서 주먹밥을 나누고 격려하면서 이뤄낸 광주는 대동세상이었습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 3학년이었던 김용철 씨(62)는 40년 전을 떠올리며 ‘민주’와 ‘대동세상’ 두 단어를 얘기했다.

그는 이 가치로 똘똘 뭉친 시민들이 ‘광주정신’을 만들어왔고, 그것이 오늘의 ‘정의로운 빛고을 광주’를 만들었고, 이를 근간으로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민주주의를 앞당겼다고 믿는다.

5·18민주화운동을 대학생으로 겪은, 온몸으로 참여한 그는 ‘살아남은 자의 당연한 책무’라며 현재까지 16년째 ‘오월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오월지기는 5·18민주화운동사적지(오월길)를 찾는 시민들에게 오월의 역사와 진실을 알리는 친구이자 자랑스런 역사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문화해설사.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과 청소년들에게 선입관 없이 당시의 광주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려드리는 역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 옆에서 쓰러져간 친구와 동지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명예를 높이고, 정신을 잇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는 지금도 금남로와 도청 앞을 뛰어다니던 때가 아련하게 떠오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살육이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곳곳에 널려진 시신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리, 그러나 광주는 함께 서로를 이해하며, 도우며, 살아남았다고 얘기한다.

“열흘간의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 엄청나게 쏟아지는 부상자와 시신들, 그 속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함께 느끼고 있었습니다. 무질서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강력사고 한 건 없이 질서를 지키고, 기간 내내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누린 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제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는 아직도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느니, 남파간첩이 일으킨 불법 폭력시위라느니 하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한 명에게라도 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즐겁게 오월지기로 나선다.

오월지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려는 그는 오늘도 오월 광주 사적지 현장을 부지런히 누비며, 오월영령을 만나고 그 뜻을 이해하려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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