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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위해 목숨을 건 부자(父子)의 불꽃 같은 삶유찬희·유기석·유기문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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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9  09: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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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희 선생(1884.8.8~1930.2.13)은 1913년 북간도에서 간민회 등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에는 조선독립기성총회와 충열대를 조직했고, 1920년에는 임시정부 자금 모집과 대한국민회 무장투쟁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1923년 유찬희 선생은 중국 돈화현에서 수전을 개발하고, 조선독립을 위한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동성노농공사의 간사로 활동했다. 이후 블라디보스톡,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유찬희 선생의 첫째 아들인 유기석 선생(1907. 1.12~1980.11.27)은 1930년 상해에서 아나키즘 단체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의열투쟁을 촉구했으며, 천진에서 대한독립당주비회가 창간한 ‘한국의 혈’ 고문으로 활동하며 안창호 선생의 대독립당 결성 운동을 후원했다.

1938년 김구 선생, 남화한인연맹원과 협력해 일본 군함 출운환호 폭침과 상해지역 일본 책임자 곡정지 공사의 암살을 시도했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광복군 제3징모분처 대장으로 활동했다.

유찬희 선생의 둘째 아들인 유기문 선생(1910 ~미상)은 1931년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의열투쟁조직인 흑색공포단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천진투탄의거’와 ‘육삼정의거’, 변절자에 대한 숙청 등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1935년에는 흑색공포단의 엄순봉·이규호와 함께 상해거류민회장 이용로와 친일파 옥과빈을 처단하는 사건에 가담했다.

정부는 세 사람의 공훈을 기려 유찬희 선생에게는 2010년 독립장을, 유기석 선생에게는 2008년 독립장을, 유기문 선생에게는 2010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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