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로서의 보훈 

지난 호에 정리한대로 ‘평화는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다. 큰 힘이 작은 힘에게 원치 않는 피해를 주는 현상이 폭력이라면, 이러한 폭력은 불공평과 부조화의 증거이다. 불공평과 부조화를 줄이거나 없애는 만큼 평화가 구체화된다는 뜻이다.

이 때 불공평과 부조화를 경제적이고 제도적으로 줄여가는 행위는 복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복지는 경제적 공평의 구현이자, 넓게는 공평을 위한 제도까지 조화롭게 적용되는 과정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극복이 일차적 과제이지만, 복지는 물질적 지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신적 차별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사회적 공평을 이루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이 지점에서 복지는 보훈의 영역과 겹친다. 그저 겹치는 정도가 아니라, 보훈은 복지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국가를 위해 애쓰다 희생당한 유공자에게 물질적으로 보답하고 그 정신까지 선양하는 보훈 행위는 사회적 공평의 실현 과정이며, 대표적인 복지의 구현인 것이다.

거버넌스로서의 보훈

복지의 실천은 사회적 거버넌스의 주 내용이기도 하다. 한 사회 전반의 과제를 이루는 데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제반 장치가 거버넌스이다. 복지는 개인 대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물질 증여가 아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베푸는 물질적 시혜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복지는 거버넌스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공적 과제이고, 사회적 공평을 구조화시키는 과정이다.

물론 그 과정에 물질이 베풀어지거나 배분되기도 한다. 국가가 의료적 치유로 뒷받침하기도 하고 거주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가보훈처나 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이러한 과제를 진지하게 수행 중이기도 하다. 이런 실천과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불공평으로 인한 상처에 사회가 두루 공감하고, 공평한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구성원들 간의 다양한 협력과 실천이다. 다양한 행위 주체들의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거버넌스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수직적 정책만이 아니라, 횡적이면서 입체적인 관계망을 건강하게 구조화시켜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제적 보훈

보훈이 이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 보훈에는 ‘사후적 보상’도 필요하지만, ‘선제적 보훈’의 과제도 있다. 선제적 보훈의 최종 목표는 순국이든 순직이든 희생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의 구축이다. 이러한 선제적 보훈은 특정 국가만을 위한 실천에 머물지 않고, 인류 전체를 염두에 둘 때 이루어진다. 다른 국가에 적대적인 보훈은 다시 그 적대국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늘 불안정하다. 보훈 정책은 일단 국내적 상황에 어울려야 하지만, 주변국과 세계의 평화까지 염두에 두고 시행될수록 좋다.

가령 2020년 현재 베트남에게 한국은 최대 투자국이자 2대 교역국이다. 한국인 여행객도 엄청나다. 이 마당에 베트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보훈 정책이 만일 베트남을 여전한 적대국으로 간주하고서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모순 아니겠는가. 보훈이 전쟁 희생자에 대한 물질적 지원만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사라진 세계, 서로에게 상생적인 문화의 건설까지 의식한 인류애 차원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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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의 표상이라 할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희망한 바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독재를 거부하고 진정한 민주와 통일을 원했던 백범이 추구한 진리도 이런 것이었다.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백범이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인류의 현 단계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다.’(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

서로 돕고 끌어안는 보훈

사람 사는 모든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보훈은 국가의 독립(獨立)과 보호(護國)와 성숙(民主)에 희생적으로 기여한 이들에 대한 보답과 기억이라는 점에서 인간적 정치의 일환이다. 공평한 사회의 건설이고 호혜적–백범의 표현대로 하면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문화의 구축이다. 타자에 대립적이지 않은, 서로 돕고 끌어안는 보훈이어야 한다. 평화와 순환하고 복지로 이어지는 보훈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훈, 복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런 세상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희생을 기억하고 그에 보답하는 행위로 사회적 공평을 이루며 복지를 구현해야 한다. 인류의 공통적 희망과 암묵적 기대를 구체화시켜가야 할 과제가 보훈인 모두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글/이찬수(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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