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 기운 가득한 4월, 굳었던 땅을 뚫고 푸른 싹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이 피어나며 자연의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계절이기에 더욱 가슴에 사무치는 날이 있다.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 학생과 시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4·19혁명. 민주혁명 60주년을 맞는 오늘, 곳곳에 남겨진 민주주의 함성의 현장을 찾았다.

 

#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구의 2·28, 대전의 3·8, 마산의 3·15에서 4·19까지 당시 희생된 선열과 부상자, 공로자들이 안치된 민주의 성지 국립4·19민주묘지에도 봄기운이 내리고 있다.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년이 지난 1962년 기공식을 갖고 공원묘지로 조성된 이곳은, 1993년 성역화 사업을 거쳐 1995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민주묘지 입구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7개의 기둥으로 우뚝 솟은 4·19학생혁명기념탑(4월학생혁명기념탑)이 이곳이 민주의 뿌리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든든한 심장임을 상징하고 있다.

광장에서 만나는 거대한 불꽃 형상의 조형물은 ‘정의의 불꽃’. 높이 9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민주주의를 향한, 정의를 추구했던 영령들의 의지가 강렬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참배로 양쪽으로 4·19혁명 당시 궐기하던 학생들의 모습과 이를 무자비한 폭력과 총으로 진압하려던 경찰의 모습을 묘사한 ‘자유의 투사’ 조각상이 잔디밭 위에 세워져 있다. 거대한 주먹과 총을 든 경찰들 앞에서 굴하지 않고 맞선 군상의 얼굴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굳은 의지가 읽힌다.

묘지 바로 정면에 세워진 제단에 참배를 올리고 묵념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문에 적힌 시는 60여년 이어져오며 4월 혁명 정신의 단면을 새기고 있었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탑 뒤로 나지막한 봉우리에 누운 희생자들과 공로자들 위로 따뜻한 햇빛이 내려앉는다.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그 소중한 생명들이 그렇게 ‘민주제단’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피의 열정은 오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로 부활했다.

 

# 청와대 분수대광장의 인권 현장 동판

60년 전, 4월 19일 서울 도심은 학생과 시민이 뒤섞인 시위대열로 뒤덮였다. 국회의사당,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앞 등 서울 대부분이 역사의 현장이다. 유혈 시위장이 됐던 첫 발포 현장은 청와대 인근 분수대 자리다.

작은 동판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성인 남성의 손을 펼친 정도의 크기로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념물. 동판에는 ‘4·19 최초 발포 현장’, ‘경찰 발포로 시민·학생 1백여 명이 쓰러진 자리’라고 새겨져 있다.

혁명 전날인 18일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던 고려대생들이 귀가하는 길에 정치깡패들로부터 피습당한 사건을 도화선으로 19일 시민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던 경무대로 가기 위해 경찰과 대치했던 곳.

경찰이 쏜 총에 맞은 시민들이 아스라이 쓰러져간, 참극이 벌어졌던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작은 동판이 그 역사를 분명하게, 큰 목소리로 증명하고 있었다.

 

# 고려대학교 4·18기념탑과 기념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고대생 피습사건 이후 선봉에 섰던 선배들의 민주정신을 잇기 위해 고대생들은 매년 ‘4·18구국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문을 지나 4·18기념탑을 참배하고, 수유리 국립4·19민주묘지를 돌아오는 마라톤을 이어나가고 있다.

중앙광장에서 민주광장으로 향하는 길 입구에서 고려대 4·18기념탑을 만날 수 있다. 조지훈 시인의 ‘사악과 불의에 항거하여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분노의 불길을 터트린 아! 1960년 4월 18일! 천지를 뒤흔든 정의의 함성을 새겨 그날의 분화구 여기에 돌을 세운다’는 비문이 당시의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기념탑을 뒤로 하면 학생회관 인근에 4·18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1998년 준공된 건물 내부에는 4·18전시실과 함께 강당, 소극장 등이 있으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써 지금도 활용되고 있었다.

도심을 걷고, 달리며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을 목이 터져라 외쳤던 선배들의 얼은 고스란히 후배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나가며, 새 시대의 민주주의를 역사에 더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 교정에 4·19기념탑과 조형물들이 세워져있으며, 미래세대에게 자유, 민주, 정의의 4·19정신을 심어주고, 민주주의 의식을 함양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서울 도심 곳곳에는 ‘4·18선언’이 있었던 안암동과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박종철 열사 고문 사망 장소인 ‘남영동 대공분실 터’,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 보안사 서빙고분실 등이 있던 곳에 인권 현장 바닥 동판이 설치돼 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서울 도심 곳곳에서 4·19정신을 이은 치열한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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