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충북 진천군에서 태어난 김영국 육군 대위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종합학교 제9기생으로 입교해 군사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후 제2사단 32연대에 배속된다.

제2사단은 1951년 6월부터 적근산에서부터 김화 동쪽에 이르는 산악지대에서 방어작전과 전방에 대한 수색작전을 펼쳤고, 적과의 치열한 공방 끝에 734고지를 확보한 후 32연대에 진지를 방어하도록 했다.

김영국 중위가 지휘하는 7중대는 연대 수색중대와 함께 734고지 전진거점을 전담하며 적의 공세에 대비했고, 중공군 제80사단 239연대가 734고지를 빼앗기 위해 총공격을 개시해왔다.

중대는 대대 규모의 적의 병력에 대항해 결사 항전했으나 수적 열세로 인해 고지의 9부 능선까지 밀렸고, 이에 김 중위가 직접 적진으로 뛰어들어 6명의 적을 사살하고 기관총 1정을 탈취하며 응전하는 전공을 세웠다.

비록 이 전투 중 김 중위와 중대원 대다수가 전사했으나 그와 7중대의 분전으로 734고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51년 육군 대위로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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