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기 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부친인 정환직 선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1906년 영천창의소를 설치하고 권세가를 지어 백성들 모두 함께 의병으로 나설 것을 호소했다.

정용기 선생을 대장으로 1,000여 명의 의병이 모여 ‘산남의진’이 결성됐고, 진군하던 중 선생은 대구감옥에 수감돼 고초를 겪었다.

이후 선생은 대구에서 김광제·서상돈 등이 일으킨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해 ‘영천군 국채보상단연회’의 회장으로 영천 지역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다.

정용기 선생은 1907년 다시 의진을 결성해 청하(옛 포항 지역 일부)·영천·청송 등지로 진군하면서 일본군과 여러차례 전투를 벌여 적군을 사살하는 등 전과를 거두었다. 같은 해 9월 선생은 본진 병력을 이끌고 청하군 죽장으로 이동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사진은 경북 영천의 충효재. 충효재는 정환직 선생과 정용기 선생의 충효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1923년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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