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5.26 화 11:15
> 현충 > 이달의독립운동가
“자주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안중근의사 (1879.9.2~1910.3.26)
나라사랑신문  |  news@narasarang.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01  15:51:43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고, 평양에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그는 1907년 의병부대를 조직해 독립전쟁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으며, 1908년 연추에서 동의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09년에는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조직해, 단지로 구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단할 결심을 한다. 그 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여순 감옥으로 이송돼 불공정한 심문과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독립과 동양평화 정착을 주장했다.

안중근의사는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공소도 포기했다.

결국 안중근의사는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 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나라사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뒤로가기 위로가기
공감, 이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

피프티 피플

피프티 피플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유학생 출신답게 호 선생은 생각했다. ‘그레이트 ...
오피니언

현장 민원 접수, 보비스 서비스…이동보훈팀은 오늘도 달립니다

현장 민원 접수, 보비스 서비스…이동보훈팀은 오늘도 달립니다
어느새 벚꽃이 피었다가 금세 지고 있다. 꽃피는 4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이 비상인 이 시국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어르신들의 보다 나은 삶을 기다리며

지난 12여년 동안 경남동부보훈지청에서 보훈섬김이로 일하며 고령·독거 유공자 어르신들을 돌봐왔다. 오늘은 인연이 닿았던 분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한 분과 얽힌 추억을 회상해 본다...
많이 본 기사
1
고엽제후유의증 질병 장애등급 종합판정 시행
2
종합비타민제를 먹어야 하는 이유
3
여름철 건강의 적 토사곽란
4
국가유공자 등 로또 판매점 신청
5
중앙보훈병원, 1,400병상으로 확대… 재활·요양병원 등 복합 운영
6
결핵과 비결핵항산균 감염증
7
내년 아파트 특별공급, 대부지원 계획 확정
8
국가유공자 주택 대부 한도 늘리고 금리 내려
9
김환기, 그의 푸른 화폭을 만나다
10
모든 생존 6·25참전용사에 호국영웅기장 수여한다
소 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30113 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국가보훈처
Copyright by 국가보훈처 나라사랑신문  |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