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고, 평양에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그는 1907년 의병부대를 조직해 독립전쟁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했으며, 1908년 연추에서 동의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09년에는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조직해, 단지로 구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단할 결심을 한다. 그 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여순 감옥으로 이송돼 불공정한 심문과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독립과 동양평화 정착을 주장했다.

안중근의사는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공소도 포기했다.

결국 안중근의사는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 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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