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쬐는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바람이 조금씩 불어올 때면 가을향기가 한껏 묻어난다. 들판과 산의 나무와 꽃들도 제 빛깔을 조금씩 바꾸며 부지런히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곧 다가올 완연한 가을을 만끽할 만한 곳으로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밭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그윽한 향기 가득한 꽃밭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해보자.

 

#경남 함안 강주문화마을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절정은 여름이라지만 아직 햇살이 따사로운 초가을까지도 쨍하게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서로 기 싸움이라도 하듯 키를 쭉 펴고 노랗게 말간 얼굴을 뽐내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면 천진난만한 웃음기 가득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듯 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경남 함안군 강주마을 주변은 온통 해바라기로 가득하다. 마을 주변에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서면서 주거 환경이 나빠지자 마을 주민들이 조금씩 해바라기를 심기 시작했고, 주변 마을에서도 따르면서 어느덧 8만㎡에 이르는 거대한 해바라기밭을 이뤘다.

멀리서부터 노란 빛을 뽐내는 해바라기에 이끌려 마을 가까이로 다가서면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두팔 벌려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곳곳에는 배려 가득한 쉼터도 마련돼 있다. 큼지막한 꽃을 자랑하는 해바라기 군집에 들어서면 더위로 답답했던 마음과 지친 심신도 가을로 삶의 방향을 바꿔줄 것만 같다.

 

#강원도 봉평 메밀꽃밭

“산 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산 이효석 작가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숨이 막힐 지경’의 메밀밭이 바로 이곳이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 끝도 없이 펼쳐진 메밀밭은 무수히 많은 흰색의 작은 꽃들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장관을 만든다.

솜이 내려앉은 듯 보드라운 흰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 낭만에 빠져들게 된다. 메밀꽃밭 사이 홀로 자리를 지키는 원두막은 찾는 이들에게 시골의 정취를 더한다.

매년 9월이면 이곳에서는 한껏 피어오른 메밀꽃과 함께 이효석 작가의 문학정신을 알리는 백일장과 민속놀이, 음악제 등이 펼쳐지는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린다.

메밀꽃밭에서 낭만을 즐기고, 문화제에서 추억을 쌓은 다음 풍미 그득한 메밀막국수 한 그릇을 비우면 미련처럼 한 조각 남았던 여름도 물러가고, 어느새 가을 안에 성큼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안산 갈대습지공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갈대가 우거진 곳, 갈대밭 사이로 난 있는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면 줄지어선 갈대들이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린다. 갈대 줄기 끝에서 피어난 이삭처럼 생긴 작은 꽃들이 함께 흔들린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갈대밭 너머로 철새들이 날아오른다. 붉은 노을이 짙게 드리운 갈대 사이로 스치는 바람에 귀 기울이면 이내 비로소 가을이 깊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을정취를 제대로 느끼기에 좋은 이곳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갈대습지공원이다. 대규모 인공습지로 만들어진 이곳의 갈대밭은 시화호로 흘러드는 지천을 끌어안고, 속에는 수많은 동식물을 품고 있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철새들이 날개짓, 곤충들의 울음까지 생명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의 갈대와 곤충들의 생명력이 넘치는 이곳에서 우리는 작은 생명들이 서로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서로가 연결된 채로 오늘을 함께 이루고 있음을 다시 배운다.

그렇게 어우러져 빚어내는 장관이 갈대습지공원이다. 이 공원에서 가을은 더 깊어가고 있다.

하늘은 높고, 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은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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