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 보훈섬김이와 강순득 어르신이 올해 심은 고추 모종을 함께 살피고 있다.

물 맑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 그 이름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짙은 청록의 물결들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 생초면의 한 주택 마당에는 모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다정한 모습으로 고추모종을 살피고 있다. 내리쬐는 햇빛에 타버린 고추를 솎아내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최은(57세) 보훈섬김이와 강순득(88세) 어르신이다.

“이 사람이 있어서 외로움을 잊고 살지요. 10년을 넘는 세월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기쁨도 아쉬움도 함께 나눴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지, 나는 ‘손녀딸’이라고 불러요. 귀가 어두워 다른 사람들 말은 잘 못 알아듣는데 희한하게도 우리 손녀딸 말은 잘 들려. 이 사람이 오는 건 멀리서도 잘 보이고, 참 신기하지요.”

강순득 어르신의 칭찬에 손사래를 치는 최은 보훈섬김이는 30대 초반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해왔다. 그는 결혼 후 가정주부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도 한편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싶어 33세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식사봉사와 목욕봉사 등 주로 어르신들을 도와드리는 데 앞장서 왔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무슨 자원봉사를 하냐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어르신들을 만나고 잘해드리는 것 자체도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인데다 또 제가 좋은 일을 하면 우리 아이와 남편, 가족들이 같이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친정어머니 영향도 컸어요. 어릴 때부터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하셨죠.”

그렇게 이어오던 자원봉사가 인연이 돼 보훈섬김이 일에 대해 알게 됐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자 하루 한 두 시간을 할애하던 자원봉사보다 하루를 온전히 어르신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일을 택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어느덧 11년이 흘렀다.

“그 덕분인지 가족들도 큰 어려움 없이 다 잘 지내고, 아이들도 심성이 곧고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어른으로 잘 자랐죠. 너무너무 고맙게 생각해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강순득 어르신과는 이제 뗄 수 없는 애틋한 사이가 됐다. 6·25참전용사 미망인으로 슬하에 자녀가 없으신 어르신은 그를 딸처럼, 며느리처럼 여기고 최 섬김이도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대하듯 수시로 찾아뵈며 삶을 함께 나누고 있다.

하지만 그가 섬김이 삶에 온 마음을 다하는 만큼 보람도 있지만 상실감이 찾아올 때도 있다.

“몇 해 전 이맘때였던 것 같아요. 바로 전날까지도 시원한 그늘에서 간식을 나눠먹으며 오순도순 얘기를 나눴던 분이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많이 힘들었고, 많이 울기도 했죠. 지금도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거의 한 달은 슬픔에 잠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한 톨의 후회도 남기지 않으려고 더 최선을 다해요.”

잠깐 회상에 잠긴 그는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금 밝게 웃었다. 이렇게 아주 가끔 큰 슬픔을 겪을 때도 있지만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웃음과 행복이라고 말한다.

“저는 별명 부자에요. ‘딸내미’ ‘최 여사’ ‘최씨’ ‘아지매’ 등으로 불러주시는 데 어르신들이 정이 느껴져요. 어르신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니 함께 있으면 웃음이 멈추지 않고 늘 즐겁죠. 남편도 제게 ‘네 편이 많아 좋겠다’며 부러워해요.”

그는 어르신들을 따르고자 잘 모시기 위해, 또 그분들의 든든한 한 편이자 버팀목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행여 무슨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라도 오면 열일 제쳐두고 어디든 달려간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사는 이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 최 섬김이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는 오늘도 강순득 어르신께 이렇게 말한다. “100살까지 사세요. 제가 곁에 있어드릴게요.” 활짝 웃는 두 사람의 미소에 한 여름이 더욱 환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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