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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폭압에 맞선 문인들 … 독립선언 등 저항적 문필로 구국에 나서다”대한민국 100년 ⑫일제강점기 문인들의 구국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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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31  15: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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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의열단의 독립이념과 전략을 담은 조선혁명선언

을사늑약과 문인들의 구국 운동

일제의 강점으로 500여 년 종사를 지켜온 조선은 망국의 시련을 맞게 된다. 조선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사실상 식민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을사늑약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제국주의의 발호로 인한 국권 상실의 위기감을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의 강압에 의한 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은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논설을 써서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우리 남의 노예가 된 이천만 동포여! 살았느냐, 죽었느냐?” 라고 하며 통한의 현실을 고발했다. 이로 인해 장지연은 구속되고 신문사는 정간 명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항일 운동의 계기가 됐다. 최익현은 의병 활동에 나섰다가 대마도에서 순국하고,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쏘고 순국하면서도 우리의 자유독립을 염원했다.

애국 계몽기 지식인들은 문필을 통한 구국 독립운동을 펼쳤다. 현채는 ‘월남망국사’(1906), 박은식은 ‘서사건국지’(1907), 신채호는 ‘이태리건국삼걸전’(1907) 등을 번역해 문필을 통한 구국 계몽운동을 펼쳤다. 또한 신채호는 ‘을지문덕’(1908), ‘이순신전’(1908), 우기선은 ‘강감찬전’(1908) 등 우리 구국 영웅들의 전기를 써 국난 극복의 의지를 고양했다. 안국선은 ‘금수회의록’(1908), 유원표는 ‘몽견제갈량’(1908), 이해조는 ‘자유종’(1910) 등의 서사물을 통해 민중의 각성과 주체의식의 함양을 촉구했다.

특히 신채호는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 ‘대아와 소아’, ‘독사신론’ 등을 써서 애국심을 발양하고 아울러 역사에 대한 인식을 고취했다. 그러나 일제는 신문지법(1907)을 실시하여 언론 출판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1909년 현채의 ‘월남망국사’를 시작으로 하여 강제 합병(1910) 이후 ‘몽견제갈량’, ‘을지문덕’, ‘이태리건국삼걸전’, ‘서사건국지’ 등 수많은 작품들을 금서로 분류해 발간과 배포를 금지했다. 우리의 문학을 통제해 반일 운동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지식인 망명과 저항적 문필 활동

   
한용운 ‘님의 침묵’ 표지.

그런데 1910년 일제강점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언론이나 문학을 통한 저항 내지 독립운동이 어렵게 된다. 일제에 의해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이 폐간 당하게 된다. 강제 합병으로 홍범식과 황현은 각각 유서와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고, 이 시기를 전후해 수많은 지식인들은 국외로 망명한다.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이광수 등은 망명하여 국외에서 <권업신문>, <독립신문>, <신대한> 등 신문과 <향강잡지>, <신한청년>, <진단>, <천고> 등 다양한 잡지를 발간하여 우리의 말과 역사, 정신을 계승 유지함은 물론이고, 다양한 애국적인 글을 발표하는 등 반일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울러 박은식은 ‘동명성왕실기’(1911), ‘천개소문전’(1911), ‘몽배금태조’(1911), ‘안중근전’(1914), ‘한국통사’(1915),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등을 썼으며, 신규식은 ‘한국혼’, ‘아목루’를, 신채호는 ‘꿈하늘’, ‘용과 용의 대격전’, ‘류화전’, ‘조선상고사’, 조소앙은 ‘유방집’, ‘소앙집’ 등을 쓰는 등 문필을 통한 구국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

3·1운동을 전후해서는 대동단결과 독립, 그리고 항일투쟁을 선포하는 선언서들이 나온다. 조소앙은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기초하여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14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서명했다. 이것은 독립운동의 활로와 이론의 정립을 모색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수립에 관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안한 것이다.

이광수가 기초한 2·8선언서는 1919년 2월 8일 동경에서 선포됐는데, 이는 3·1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에서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서’가 <독립신문>에 여러 차례 실려 독립의식을 앙양했으며, 1919년 음력 2월(양력으로는 3월)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규식, 신채호 등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서명한 ‘대한독립선언서’가 선포됐다. 이들 선언서는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1923년 1월에는 단재가 기초한 의열단선언서 ‘조선혁명선언’이 선포됐다. 이 선언서는 일본에 대한 무장 투쟁과 민중 직접 혁명을 통한 조선의 독립 달성을 외치고 있다.

국내외 문인들의 항일 문학

국내에서는 3·1운동의 영향으로 문화정책이 실시되어 신문 잡지가 발간되자, 항일 저항문학이 나오게 된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작품을 써서 <개벽> 1926년 6월호에 발표했다. 그는 이 시에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라고 마무리한다. 일제강점의 현실에서 어쩌면 봄조차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빼앗기고 싶지 않은 절절한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일제는 이 작품이 실린 <개벽>지를 발매 금지 처분했다.

심훈은 1930년 3월 1일을 맞아 ‘그날이 오면’(1930.3.1)이라는 시를 썼다. 그는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라고 노래했고, 이육사는 ‘광야’에서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1945) 하여 독립과 해방의 그날을 염원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임화는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이가 있고/ 그러고 모―든 어린 ‘피오닐(pioneer)'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즉도 더웁습니다”라고 하여 투쟁 의식과 민족 해방 의식을 담아냈다. 이밖에도 민족주의 계열 시인 한용운, 윤동주도 저항 의식을 담은 시를 썼으며, 사회주의 계열의 시인 박팔양, 박세영, 이용악 등도 현실고발과 투쟁의식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다. 이 시기 해외에서는 김지섭이 ‘배 가운데에서’라는 애국시를 남기고 일본 왕궁을 폭파하려다 체포돼 옥사했다.

아울러 소설 분야에서도 다양한 항일 소설이 나왔다. 근대 소설의 형성에 기여한 이광수는 2·8선언서를 작성했으며, 김동인은 동경에서, 염상섭은 오사카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민현기의 ‘일제강점기 항일투쟁 소설선집’에 따르면, 국내에서 항일 독립투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은 50여 편에 이른다.

이광수의 ‘유랑’, 김동인의 ‘태형’, 일사의 ‘어머니’, 주요섭의 ‘목소리 둥둥둥’, 심훈의 ‘동방의 애인’ 등 수많은 소설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일부 소설은 일제 검열당국의 의해 복자 처리되거나 발표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국외에서 독립운동의 실상이 오롯이 형상화됐다. 3·1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두 팔이 잘려 죽은 여학생의 이야기를 그려낸 기월의 ‘피눈물’(1919.8.21~9.27), 간도에서 일화 15만원을 탈취한 철혈광복단의 사건을 담은 ‘이순화’, 아버지의 독립정신을 아이가 계승하는 ‘독립혼’, 독립군의 국내 침투 및 습격 현장을 아주 생생하고 실감나게 그려낸 ‘눈 나리는 국경의 밤’ 등이 그러한 것이다. 한편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아리랑가극본’을 공연해 투쟁과 혁명의식을 고취하였다.

 

항일 투쟁으로서의 문학과 미완의 과제

“문은 무보다 강하다”고 했다. 일제는 무력으로 3·1운동을 진압하려 했지만 오히려 더 큰 민족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문인들은 무력에 맞서 붓을 들었다. 단재는 1912년 ‘이날’에서 경술국치를 되새기며,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몸을 바쳐 우리가 자나 깨나 사나 죽더라도 이날을 잊지 말고 우리가 이날이 우리의 기념할 날 되기까지 힘쓸지어다”라고 기술했다. 그리고 1923년 ‘조선혁명선언’에서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라고 언급했다. 민중과 더불어 일본을 몰아내고 일체 제도를 개선하여 이상적 조선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문학이 일본의 절대 권력이나 힘에 복종하지 않고 비판과 저항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일제강점기 우리의 정신은 살아나서 마침내 독립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자유와 평등의 이상적 조선 건설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김주현 /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6년 개봉한 윤동주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의 한 장면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만해문학박물관 전경.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단재신채호기념관 내부 전경. 단재 신채호 선생과 관련한 자료와 기록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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