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창원에는 산이 하나 있고 산 정상에 장방형의 큰 바위가 앉아 있었다. 고을의 어디에서 보아도 장롱만큼 크게 보여 예부터 농바위라 부르고 그 산을 농바위산이라 불렀다. 산에 나무가 많지 않던 그때에는 시야가 트여 먼 들판 길에서 보아도 환히 보였다.

해가 농바위산 위에서 각을 이루면 중참을 먹었고, 농바위산에서 산그늘이 내려오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저녁을 준비하셨다. 시계가 흔치 않던 그 시절, 시계처럼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말없이 도움을 주었던 농바위였다.

등하교 길은 비포장 도로였고, 신발도 허술해 돌부리에 채이거나 넘어져 정강이에 상처 하나 쯤은 달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거하게 넘어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뒤엔 돌이 미워지고 싫어지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계절과 바람에 흔들리다 보면 모진 세월에도 변함없이 앉아 있는 돌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풍우에도 충성스럽게 비탈의 흙을 받치고 지탱하여 그 위에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음을 보면 돌이 자연에서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새삼 느낀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은 또 하나의 농바위는 부산의 이기대 바닷가에 서있는 부처상 바위다. 이기대는 푸른 파도가 철썩이는 해안에 태초의 기암절벽이 이어지고 절벽의 바위 사이엔 풀과 잡목들이 위쪽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그 아름다운 절벽 아래 우뚝 솟은 삼중의 돌도 농바위이다. 이곳의 농바위는 관광객이 다니는 갈맷길가에 예쁜 명찰로 설명하고 있다. 이기대는 부산이 품은 원시 그대로의 푸른 숲이요, 기암괴석이요, 숨 쉬는 허파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곳도 해안 쪽을 제외하면 이미 개설된 도로를 따라 많은 차량들이 왕래하며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 더 이상 이곳의 나무와 풀, 바위들이 훼손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 처음 농바위를 봤을 때 가슴 저렸던 절경을 떠올리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의 산과 강은 굽이마다, 고개마다 바위가 있어 나무와 풀이 저 마음대로 뿌리를 내리고 푸른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산과 강을 생각하면 한결같이 떠오른다. 산은 나무와 풀이 등을 기댈 수 있는 바위가 있어 수(壽)를 하고 의(義)가 있고 빛(光)이 난다.

달 밝은 밤이면 옛적에 산촌이 가난하여 바다로 고기잡이 하러간 헤어진 형제를 마중한다는 전설을 꿰고 앉은 창원의 북면 산상 농바위와, 천년을 파도에 휘둘리지 않고 어부의 무사 안녕을 빌며 부처상이 되어 서있는 이기대의 농바위가 유정하다.

이성문 경남 창원 출생. 국가유공자이며 현재 부산지역 시인협회 회원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 ‘바람 불어 피는 풀꽃’ ‘오작교를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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