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도청 진입을 앞두고 광주시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송을 했던 박영순씨가 당시를 재현하는 상황극을 마치고 돌아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일어나 맞으며 위로하고 있다.

# 빗속 어수선한 ‘민주의 문’ 앞

5월 18일 오전, 이제는 ‘오월 광주 민주묘지’의 상징처럼 돼버린 길가의 이팝나무가 여름을 재촉하는 비를 맞고 서있다. 조금은 처연한 느낌.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오시는 건 뭐람.”

참석자들의 작은 푸념 속에 기념식으로 들어가는 초입이 어지럽다. 그 사이를 뚫고 구호가 들려온다. 여러 가지 플래카드 속으로 각기의 주장을 담은 구호가 흩어진다. 그래도 광주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 그 뜻을 제대로 기리기만 한다면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이들도 많았다.

# 비가 그치고 조금씩 하늘이 열리고

기념식이 시작되자 신기하게도 예보에 없이 비가 그쳤다. 조금씩 하늘이 열리며 빛을 내보여 기념식장은 정리가 되고 있었다. 비옷을 하나씩 벗어내며 기념사에 집중할, 그리고 공연 속 의미 읽기에 집중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늘이 돕네, 참 신기하게도.”

조용히 혼잣말을 하는 소복차림의 유족이 눈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취임 2년 만에 다시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기념사 초반 대통령이 잠시 목 메인 듯 침묵으로 중단됐다 이어진다. 참석자들이 박수로 힘을 보탰다. 그리고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문 대통령, 부끄러움 고백

“이제 내년이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때 그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올해 기념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부끄러움’ 고백에 식장이 숙연해졌다.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너무나 큰 빚을 졌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같은 시대,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을 함께 품고 살아왔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 분향대에 서다, 차별 없이 누구나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마무리됐다.

“광주로부터 뿌려진 민주주의의 씨앗을 함께 가꾸고 키워내는 일은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오월이 해마다 빛나고 모든 국민에게 미래로 가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긴 박수.

묘지 앞단에서 ‘오월 폄훼 발언’을 사과하라는 시민들의 구호가 한번 휘돌아 지나고 일반 참배가 시작된다.

대통령과 요인들이 참배했던 그곳에 시민들의 줄이 길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찾아온 ‘장삼이사’ 평범한 사람들, 눈물을 머금은 광주 시민들, 특별히 기억해 찾은 외국인들까지.

줄서서 한 송이 국화를 바치거나 분향을 하는 그들의 경건한 손길과 마음 속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소중한 미래가 자라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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