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나란히 앉아 신정자 어르신의 아픈 팔을 안마하는 김옥엽 보훈섬김이.

신록의 푸르름이 가득한 6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아파트 문 앞에 다가서자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밝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모녀 같기도, 자매 같기도 했다. 바로 광주지방보훈청 김옥엽(56) 섬김이와 신정자(82) 어르신이다. 두 사람은 ‘봄날’ 신록 빛깔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빨간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멋쟁이 신정자 어르신의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베란다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꽃들이 어우러져 제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얼마 전 손목과 발목을 다쳐 힘쓰는 일은 전혀 못한다는 어르신을 위해 김옥엽 보훈섬김이는 요즘 그의 손발이 돼 드리고 있다. 베란다에 예쁘게 핀 화분 분갈이도, 항아리에 담긴 고추장과 된장도 김옥엽 섬김이의 작품이다. 그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라는 어르신의 말씀에 김옥엽 섬김이는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아요. 어르신이 살림을 너무 잘 하셔서 어르신이 하자는 대로만 하면 2~3번 손이 가야 할 것도 1번으로 줄어들고, 보기에도 훨씬 좋아져요. 저도 살림을 꽤 오래한 편인데 요즘엔 어르신께 새롭게 배우는 게 많아요.”

그가 어르신께 배우는 것은 살림 노하우 뿐만이 아니다. 신정자 어르신은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훈수 두기보다는 잘 이해하고 토닥여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틈틈이 노래교실을 포함해 다양한 모임을 다니며 젊게 살고, 남에게 잘 베푸는 어르신이다. 그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르신의 생활철학과 따뜻한 마음을 함께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도움 주고, 삶의 지혜를 배우다

올해로 9년 차인 김옥엽 보훈섬김이는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고 있다. 맛있게 장 담그는 방법이나 효과적인 욕실 청소법 등 살림 노하우와 건강관리 비법부터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법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들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어르신들이 평생을 살며 깨달은 것들을 제가 매일매일 익히고 있는 셈이지요. 직접 말해주실 때도 있고 가족을 대하는 모습,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모두 소중한 배움이죠. 편찮으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보훈섬김이를 하며 배운 것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배우며 봉사한지 근 10년, 이제는 베테랑이 된 섬김이에게도 힘들었던 시기는 있었다.

“처음에는 제가 하던 대로, 제가 생각한 대로 일을 하려고 했어요. 어르신들은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오신 분들이니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어느 순간, 기본적으로 어르신들 방식에 따르기로 입장을 바꿨더니 한 번에 문제가 해결되더라구요. 어르신들도 곧바로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지금은 특별히 서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통하는 사이가 됐죠.”

요즘 그가 힘든 것은 모시던 어르신의 건강이 나빠졌을 때, 그가 어르신께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을 때다.

“예전에 모셨던 어르신이 몇 년 전 요양원으로 가셨어요. 그런데 그분들은 계속 저를 기억하고 전화로 ‘보고싶다’고 연락을 해오십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아요. 또 조건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사시는 분들을 뵐 때면 도와드릴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정말 마음이 아파요. 청소도 하고 정리를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때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을 돌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느샌가 다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또 다른 어르신 댁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친다. 어렵게 사는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의 환경이 나아지고, 자신과 어르신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는 게 소박한 그의 소망이다. 그는 하루하루 소망을 이뤄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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