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선생(1881.1.29~1950.12. 10)과 김순애 선생(1889.5.12~19 76.5.17) 부부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김규식 선생은 1906년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여러 강연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 신규식과 함께 박달학원을 설립하고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독립운동에 힘썼다.

선생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됐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한국독립에 관한 청원서와 한국독립 항고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 다수의 독립운동 홍보문서를 작성·배포해 한국인의 독립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선생은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과 외무위원을 맡았고, 1942년에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보선됐고, 1944년 부주석에 취임했다.

김순애 선생은 1919년 김규식 선생과 결혼한 후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해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6년 임시정부경제후원회에 참여해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 활동을 했고,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해 다수의 간호원을 배출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30년에는 한인여자청년동맹을 결성해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선생은 1945년 환국해 이듬해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약하며 여성교육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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