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기도 전에 곰보빵을 한 개 들고 앉았다. 나는 곰보빵을 먹어도 겉에 있는 울퉁불퉁하고 바삭한 곰보를 좋아한다. 순식간에 곰보빵 한 개를 먹어치우고 두 개째 집어 드는데 울룩불룩한 곰보빵 위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명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명희는 아직도 곰보빵을 싫어할까?

명희는 이웃에 살던 중학교 동창이다. 단짝 친구였던 명희와 같이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곰보빵을 한 입 베어 무는데 갑자기 그녀의 팔이 번쩍 들렸다. 입에 대지도 않은 빵을 학교 뒤 담 너머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명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희는 얼굴이 얽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명희처럼 얼굴이 얽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명희는 마마자국이 꽤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명희는 제지공장에서 일했다. 수년이 넘게 다닌 공장에서도 인정받고 돈도 제법 많이 모았다는 명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꼭 촌스러운 곰보빵이 세련된 모카 빵으로 변하는 것처럼 화장이 짙어지고 머리 스타일도 달라졌다.

어머니는 명희가 같은 공장에서 사무보는 남자와 사귄다고 했다. 남자는 고등학교를 나오고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다고 했다.

보기엔 거칠고 투박해도 먹어보면 그 맛에 중독되는 곰보빵처럼 생활력 강하고 착한 명희의 심성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시집가서 이듬해에 바로 아들을 낳았다는 소린 들었는데 몇 년 전 친정에 다니러 가니 명희가 이혼당하고 혼자 산다고 했다. 남편한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혼의 아픔으로 갈팡질팡하던 명희가 다시 삶에 끈을 부여잡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를 시작해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로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곰보빵을 맛본 지 4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빵을 대하는 마음이 편안한 것처럼 명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것은 바로 노릇노릇하고 구수한 곰보빵처럼 명희한테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수더분함 때문이리라.

가끔 여리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서 겸손함을 배울 때가 있다. 어린 마음에 곰보 자국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빵을 집어 던졌을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삶의 능선을 오르내리고 있을 명희가 몹시도 그립다.

박종희 국가유공자인 시부모님과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2000년 월간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세종시에 거주하며 수필창작 강사 등으로 이웃의 글쓰기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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