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마련된 도서관, 지혜의 숲 서고.

끝이 있다면 시작이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열두 달을 뒤로 하고 다시 새 해가 시작됐다. 끝내지 못했던 목표에 대한 후회와 상념을 밀어 놓고 어느 방향으로든 다시 한걸음 디뎌보는 새 날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지나간 날을 통해 삶을 깨닫고 이치를 배운다. 흘러간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새 해를 맞는 오늘, 고전을 들여다 볼 시간이다.

도덕경

노자 / 오강남 평역 / 현암사

 

노자(老子)가 남긴 글로 잘 알려져 있는 도덕경은 원래 한문 5,000자 남짓, 200자 원고지로 겨우 25매 분량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중국 고전 가운데서 주석서가 많기로 유명한 책이다.

모두 8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덕경의 내용은 때로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요, 때로는 우리의 심혼을 일깨우는 통찰이요, 역설이기도 하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잔잔히 들려주는 진리의 말은 물질문명에 대해 지나친 믿음을 갖고 사는 우리 현대인에게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도와 덕에 관한 경전’인 도덕경의 기본 메시지는 우주의 기본 원리인 ‘도(道)’의 흐름을 체득하고, 그 흐름에 따라 살아감으로 참다운 자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덕’을 보라는 것이다. 노자는 진정으로 자기를 완성하려면 자기를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노자의 ‘도덕경’이 지닌 미덕은 인간문명사회를 비판하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진중함에도 있지만, 5,000자로 이뤄진 간소한 텍스트가 펼치는 무궁무진한 해석의 지평에서 찾을 수 있다.

약육강식의 싸움에 지친 사람에게는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고, '도(道)'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도의 길을 밝혀주는 진리의 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읽는 이마다 그 의미에 차이가 생겨 ‘도덕경’이라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담론의 치열함도 세인에게는 또 하나의 매력이 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 북드라망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들뢰즈의 사상으로 연암의 역작 ‘열하일기’를 참신하게 재해석했다.

지난 2003년 ‘고전 다시쓰기’라는 기획의도 아래 출간된 이 책은 ‘고전은 어렵다’라는 불변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책을 펼치자마자 연암 박지원을 실학자나 문장가가 아닌 ‘유머의 천재’로 자신 있게 단언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연암이 얼마나 ‘유머의 천재’인지 널리 알리고” 싶어서란다.

‘열하일기’는 당대에는 누구나 읽었지만 함부로 읽어서는 안 될 불온서적이었고, 선대의 문집을 정리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이 후손의 의무였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손자(박규수)조차 세상에 내놓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문제작이었다.

저자는 들뢰즈의 철학개념을 ‘열하일기’에 흘려 넣었다. 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되기·영토화·클리나멘·홈 파인 공간’ 등의 용어는 18세기 조선의 박지원의 것이 아닌,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연암의 사유와 들뢰즈의 개념어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흐르고 있다. 그 흐름 또한 이 책이 만들어냈던 ‘일파만파’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을 따라 연암과 ‘열하일기’ 그리고 고전으로 가는 독자들 또한 ‘아주 낯선 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세계가 본질이나 중심이 아닌 ‘관계’로 되어 있다고 본 노자 사상을 꿰뚫어봄으로써 ‘생각하는 힘’을 복원하는 길을 제시한다. 최진석 교수는 현대인이 외부로부터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지적 체계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어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계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념과 기준에서 벗어난 ‘나(자기)’로 돌아가야만 ‘생각하는 힘’, 즉 인문적 통찰력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자기’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기 자신을 일반명사 속에 함몰되도록 두지 않고, ‘고유명사’로 살려내자는 것이다. ‘고유명사’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자기로부터의 혁명에서 시작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큰 공감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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