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재고택에 내린 서설이 따뜻한 겨울을 만들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나간 요즘의 건물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흙과 나무, 물줄기까지 한 집인양 조화롭게 지어진 우리나라 전통 한옥은 깊은 안정과 위로를 준다. 고택은 특히 찬바람이 불어 서늘해질 때 운치를 더한다. 선조들의 생활터전이었던 한옥은 이제 후손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공간이 됐다.

 

청송 송소고택

 

세종대왕의 정비 소헌왕후는 청송 심씨 가의 딸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심온,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을 도운 심덕부 가문이다. 청송 심씨 가문은 영조 때 크게 번창했는데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덕천리에 99칸 가옥을 짓고 ‘송소세장’이라 이름 붙인 것이 지금의 송소고택이다.

송소고택은 경북 북부 민가양식으로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사랑채, 생활공간, 작업공간으로 구분되는 등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또한 바깥마당에 담장으로 구획한 내·외담과 대가족 제도 하에서 4대 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별묘가 있다.

송소고택의 특징 중 하나는 완전히 독립된 별채를 갖췄다는 것이다. 별체는 혼기가 찬 딸이 머물던 곳으로 관혼상제의 예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고택은 남동향집으로 대문채, 안채, 큰사랑채, 사당 등 10채의 건물이 경내에 있는데 그 중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는 개화기 이후의 건물이다. 부분 개보수를 거치면서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소고택은 우리나라에 단 3곳뿐인 99칸 가옥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예약문의 054-874-6556)

 

논산 명재고택

 

조선 숙종 때 소론의 근거지였던 충남 논산에 소론의 수장이었던 윤증의 호를 딴 한옥이 있다. 명재고택은 명재 윤증이 팔순을 맞은 1709년쯤 세워졌다. 그가 고택에 살았던 적은 없다. 윤증의 제자들이 기금을 모아 건립했지만, 성품이 대쪽 같았던 윤증은 근처 초가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명재고택에는 사대부집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높은 솟을대문과 사랑채 주변에 담이 없다. 권위 의식 없이 마을과 소통하고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두고 있다는 집주인의 심성을 표현하는 것 같다. 사랑채는 풍류를 즐기기 좋도록 개방적으로 지어졌다. 마당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오고 사랑채 왼편의 문이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다.

명재고택은 조선시대 활용주의 정신이 함축돼 있는 배치 형태, 창호 등에서 기능성과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곳간채의 통풍과 안채의 일조량까지 계산한 과학적인 건물 배치, 안채를 독립된 공간으로 보호할 수 있는 구조,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내외벽, 효율적 공간 창출의 지혜를 가늠해볼 수 있는 큰 사랑방의 안고지기(미닫이와 여닫이를 동시에 작동하는 장치)문 등 집안 곳곳에 삶의 지혜가 숨어있다. (예약문의 041-735-1215)

 

안동 양진당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양진당은 조선 명종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 류중영과 그의 맏아들 겸암 류운룡이 살던 집으로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랑대청 앞 처마 아래에는 ‘입암고택’ 현판이, 사랑대청 안 북쪽 벽 바라지창 위에는 ‘양진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이곳을 크게 중수한 류운룡의 6대손인 류영의 아호에서 따온 것이다. 풍산 류씨 가문의 대종택인 양진당은 원래 99칸이었으나 지금은 53칸만 남아있다. 마을의 다른 가옥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사랑채의 높은 기단, 좌우로 뻗은 행랑채 등은 이곳이 대종택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양진당 대청마루에는 커다란 세살무늬 4분합문이 기둥 사이에 있다. 여름에 양진당 대청마루에 앉아 전면의 분합문을 열면 솟을대문 위로 아득하니 문필봉이 보인다. 문필봉은 류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의 입교당 서측방의 들창을 열면 보이는 산으로, 문필봉을 놓고 양진당과 병산서원이 마을로 연결된 셈이다.

사랑채 옆으로 난 협문을 나서면 넓은 후원과 함께 다른 고택에서 볼 수 없는 양진당만의 특징으로 두 개의 사당이 은행나무 밑에 자리하고 있다. (예약문의 054-853-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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