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환 선생은 유학을 공부한 학자로 1907년 12월 김준 의진에 합류해 좌익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좌익장을 맡은 선생은 함평읍. 창평 무동촌, 장성 낭월산, 영광 월암산, 광주 어등산 등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1908년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의병장 김준이 순국하고, 일본군이 추격해오자 함평 당산촌 나평집으로 후퇴해 후일을 도모했다. 일본군의 진압작전이 종료되고 감시망이 느슨해지자 흩어진 의병들을 다시 모아 정비하기 시작했고, 이때 전북 이석용 의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과 연합해 용진산에서 200여 명 규모로 의진을 개편하고 의병장이 됐다.

조경환 의진은 1~200명 내외의 군세를 형성해 열악한 무기로 일본군경과 맞서 싸우며 광주, 함평, 영광, 장성, 담양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선생의 의진은 1909년 1월 어등산 전장에서 야마다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20명이 전사하고 10명이 체포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당시 선생은 총탄을 맞고서도 부하들의 명단을 불사르고 어등산 전장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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