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천묵 선생은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1906년 보성학교 학감으로 본격적인 교육활동을 시작했고, 1909년 보성학교의 교장과 경성향교에서 일하며 지역의 중심인물로 부상했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1907년 이후 계몽단체인 대한협회 경성지회에 참여해 이후 지회장을 맡으면서 경성지회의 활동을 공고히 시키고 교육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선생은 교육과 자강을 통해 구국의 방법을 모색했으며 경성의병을 지원하는 한편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항일전선에 앞장섰다.

선생은 1909년 대종교에 입교한 뒤 북간도로 망명해 서일과 함께 중광단을 조직하고 대종교 포교에 앞장섰다. 선생은 대종교에서 설립한 교육기관의 교장을 맡아 민족교육을 이어가며 이주 한인 자녀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이들이 독립군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1919년에는 대한군정서의 부총재를 맡아 총재 서일을 보좌하며 단체를 이끌었고, 청산리 전투 이후 조직된 대한의용군총사령부(후에 대한독립단)의 부총재를 맡아 한인들의 교육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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