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의 여행, 여행을 위한 책. 책 속의 여행이 아름답다.

여행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피란처이며 치유의 상징, 그리고 유토피아다. 밤낮 없이 공부에 파묻힌 학생도, 육아에 지친 젊은 부부도,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은퇴해 허무함이 몰려오는 노년에도 휴식이라 하면 자연스레 ‘여행’을 떠올리며 여행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우리가 여행에서 얻고자 함이 무엇인지, 꼭 떠나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득 서늘해진 가을바람 불어오는 곳 어디든 앉아 책을 펴면 그것도 좋은 여행이 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산사 순례 (유홍준/창비)

 

지난 6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양산 통도사·영주 부석사·안동 봉정사·보은 법주사·공주 마곡사·순천 선암사·해남 대흥사 등 7개 사찰이 그 주인공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유홍준 작가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편을 출간했다. 그동안 국내편 10권에 걸친 시리즈 중 산사편을 추려 편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산, 산자락에는 절이 있다. 산과 절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에게는 익숙해서 당연한 풍경이지만 정원식 사찰을 지닌 일본, 석굴사원이 많은 중국과는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다.

이 책은 산사의 역사뿐 아니라 각 산사의 가람배치, 산을 끼고 들어앉은 산사의 앉음새, 산사와 자연의 조화가 만들어낸 ‘산사의 미학’을 전국 대표적인 산사를 들어 예찬한다.

훌륭한 명산의 능선과 푸른 녹음과 조화를 이룬 빼어난 산사의 풍경에 그윽함을 느끼고, 절집의 풍경 못지않게 은은한 새벽 예불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도량을 산책하며 국내 훌륭한 산사를 책으로나마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종교가 무엇이든, 있든 없든, 그저 그 산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을 답사길에 충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서울 선언 (김시덕/열린책들)

 

고문헌학자인 김시덕 교수가 서울을 걷고 만지며 서울 답사기를 펴냈다. 찬란한 문화유산이나 아픈 근대의 흔적 같은 이야기는 없다. 책 속에서 특별할 것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서울살이’의 역사가 펼쳐진다.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현대 서울이다. 얼핏 봐선 볼품 없는 곳들이지만 아파트 단지와 상가, 골목들, 공단과 종교시설, 주택가와 빈민가, 유흥가와 집창촌, 서울 안의 농촌 지대, 이런 곳들이 저자의 관심사다. 시민의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작가는 그 이유를 ‘장소만의 역사’가 지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다.

작가는 서울이 조선 왕조와 사대부의 전통을 잇는 도시가 아니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이 아니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도 공존하는 ‘시민의 도시’라고 말하며 이 모든 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서울의 진정한 주인, 시민을 존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컬쳐그라퍼)

 

‘언젠가, 아마도’는 단순한 기행문도 아니고 사적인 감상에만 치중한 에세이도 아니다. 타지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여정이 끝난 뒤 마주하는 순간들을 작가가 맛깔나게 풀어낸 여행 산문집이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는 휴일의 놀이공원과 다른 바 없으며, 홀로 잠드는 호텔 방은 이 세상에 오직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재확인하는 장소가 된다.

하지만 여행은 낯선 감정과 사람, 경험을 통해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깊숙이 묻어둔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며,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 기회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행이란 자발적으로 선택한 낯설고 고독한 상황에서 외롭고 무력한 상태의 ‘낯선’ 나를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닌 외로움, 낯섦, 그리움, 위안, 안도, 희망 등 여행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모든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여행의 의미, 나아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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