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된다고 하는 입추가 지났는데도 불볕더위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고 새벽녘 잠을 좀 붙이려고 누웠는데 요란한 매미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바로 머리맡 창문 방충망에 참매미 한 마리가 붙어 옥타브를 한껏 높여가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댄다.

‘굼벵이로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준비해 온 위대한(?) 생명체가 쏟아내는 저 소리에 필시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 사연을 자기의 온 힘을 다해 소리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매미의 울음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왜 저리도 세차게 울어댈까. 오랜 동안 땅 속 어둠 속에서 살다가 광명의 세계로 나온 환희의 송가인가. 아니면 7년 끝에 얻은 생의 기간이 겨우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는 데 대한 실망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노의 부르짖음인가. 곤충 중에서 가장 풍부한 성량과 좋은 음질을 가졌다는 매미, 저 작은 생명체가 비록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생애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이제 떠나 가려는가보다 생각하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예사로 들리질 않는다.

매미가 세상으로 나와 온 숲을 흔들어대듯 큰 소리로 우는 이유는 짝짓기를 위해서라고 한다. 수컷 매미는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복부에 발달한 발음기관으로 소리를 내서 운다. 수컷 매미의 날개 밑에는 진동막이 있고, 배 속에는 울림통이 있는데, 진동막이 ‘딸칵딸칵’ 진동하면 울림통의 공기가 압축되거나 이완되면서 소리가 증폭된다. 수컷 매미 한 마리가 내는 소리는 믹서기 소음에 맞먹는 70~90dB(데시벨/소리 크기의 단위)이라고 한다.

여름에 세상 밖으로 나온 수컷매미는 암컷과 짝짓기를 한 뒤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 나뭇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암컷이 그 속에 알을 낳으면, 몇 주일 지나 알은 애벌레로 부화한 뒤 먹이를 찾아 땅으로 내려가 땅속에 구멍을 파고 자리를 잡는다. 그곳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 먹으면서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간 애벌레 상태인 굼벵이로 지낸다.

장장 7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캄캄한 땅속에서 보내고 어느 여름날 새벽 땅위로 올라온 굼벵이는 나무줄기에 매달린다. 땅 속에 굼벵이로 있는 동안이나 땅 위에 나와 매미가 된 후나 천적이 많다. 땅강아지, 사마귀, 말벌 따위의 곤충과 거미, 박새, 찌르레기 등 여러 천적들이 호시탐탐 매미를 낚아챌 기회를 노린다. 어렵사리 살아남아도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또 한 번의 진통을 거쳐야만 한다. 애벌레의 등가죽을 뚫고 거듭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날개를 달고 성충으로 거듭난 매미에게는 마지막 사명 하나가 남아있다.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일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마감하기 전 종족 보존을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짝을 찾기까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야 한다. 머지않아 이생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떠나야하는 절박감에 후손을 남길 짝을 찾는 애달픈 소리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울어대는 저 우렁찬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다시 잠을 청한다. 성공적인 짝짓기로 마지막 사명을 다하고 편히 생을 마감하기를 빌면서.

 

김정복 국가유공자로 교직을 명예퇴직하고 해외에서 15년 간 우리글과 우리문화를 전파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현재 청주에서 독서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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