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년 기다린 대전의 추념식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가는 길. 19년이 걸린 시간만큼 행렬도 길었고 길도 막혔다.

아침 9시경 셔틀버스를 타게 돼 있는 월드컵경기장에 늘어선 줄만도 200여 미터는 족히 돼 보였다. 1시간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지만, 그래도 묵묵히 기다린다.

할아버지 묘소 참배를 위해 나왔다는 어린이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즐거운 표정이다. 돗자리와 음식을 준비한 유족들은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조용히 순서를 기다린다.

# 현충원 인근

이제는 길이 완전히 막혀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기다리다 못한 참배객들이 모두 걸어서 현충원을 향한다.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충원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조금씩 숙연한 얼굴들, 멀리 현충원 정문이 보이자 안도하듯 발길을 재촉한다.

차량과 유족을 안내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다소 어지럽지만 ‘나라사랑의 광장’ 대전현충원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 문 대통령, 추념사

길게 울린 사이렌에 이어 식이 시작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시작됐다. 제법 많은 자리가 아직 채워지지 못했다. 막힌 길을 뚫고 달려오고 있는 참가자들의 안타까움이 내려앉아 있는 듯했다.

“저는 오늘 무연고 묘역을 돌아보았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김기억 중사의 묘소를 참배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믿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는 스물둘의 청춘을 나라에 바쳤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고 없는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그 분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돌볼 것입니다. 모든 무연고 묘소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가족도 없이 조국을 위해 스러져간 그들의 넋은 오늘 어떤 위로를 받았을까.

# 꽃다운 소방공무원 추모식

 

추념식은 자리를 옮겨 소방공무원 추모식으로 이어졌다. 식장은 커다란 모니터와 음성만 들려올 뿐이었지만 곳곳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김신형 소방장, 김은영 소방사, 문새미 소방사. 꽃다운 20대 청춘이 민생의 현장에서 희생됐고, 오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린 것. 눈물짓는 유족에게 고이 접혀진 태극기가 전달됐고, 대통령 내외는 정중하게 꽃다발을 이제 겨우 자리잡아가는 묘소에 바쳤다. 식장에 참석한 소방공무원들 좌석에 커다란 침묵이 덮였다.

# 하늘 수놓은 태극마크

 

 

대전현충원 위를 나는 비행기가 하얗게 태극무늬를 그리고 지나갔다. 이어 직선을 곧게 그리며 다시 비행기가 지나갔다. 오늘의 추모식에 참석한 후손들과, 먼저 가신 영령들을 이어주기라도 하듯.

점점 희미해지는 문양은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의 마음으로 내려앉았으리라.

 

 

 

# 현충원 묘소 곳곳의 가족들

추모식은 끝났지만 오늘 하루 종일 이곳을 찾을 유족과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묘비에 커다란 양산을 씌운 가족,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올리고 경건하게 절을 하는 중년의 아들, 남편인 듯 묘비를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어르신, 할아버지를 만나러 왔지만 나들이 자체가 즐거운 아이들…

그렇게 대전현충원의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차가 막혀도, 갈 길이 멀어도, 마음이 조금씩 뭉클해져도 좋을 그런 하루였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