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당 선생은 1908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임시정부 공립학교인 인성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7월 독립운동가 엄항섭 선생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선생은 남편을 내조하며 자녀들의 교육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살다가 1927년 11월 상해에서 결성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며 독립투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선생은 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독려하고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중국 가홍 등지로 이동할 때 폐결핵으로 고생하던 이동녕 선생과 장사 남목청에서 피습당한 김구 선생을 극진히 간호하는 등 독립운동가 병간호와 살림에 힘쓰며 1936년에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했다.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하자 항일과 독립을 위해 한국혁명여성창립동맹을 발족하고 애국부인회를 재건했다. 특히 선생은 중경방송국에서 일본군 소속 한인 사병들을 광복군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반일선전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중국에 남은 한인들을 보호하느라 즉시 환국하지 못한 선생은 1946년 6월 조국 땅을 밟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편을 잃고 힘겨운 삶을 살아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