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유길에서는 법정스님의 나지막한 이야기가 숲을 타고 들려온다.

쏟아지는 쨍쨍한 햇볕과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바람이 훅 불어오는 날씨에는 갑갑한 곳에 있더라도 도무지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면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서 그늘진 가로수 길과 상쾌한 미풍이 불어오는 숲길이 눈앞에 펼쳐지기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자연이 선사하는 그늘과 다져놓은 흙길, 짙푸른 잎사귀들이 다가오는 따가운 여름을 버티게 하는 한줄기 희망이다.

# 순천 송광사 무소유길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법문이 담긴 ‘산에는 꽃이 피네’ 속 글귀다.

순천 송광사 입구를 지나 ‘맑고 시원하게 씻어주는 문설주’란 뜻을 가진 청량각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법정스님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불일암으로 들어서는 길 이정표가 보인다. 편백나무 숲 앞에 놓인 작은 오솔길은 송광사와 불일암을 오가는 길로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무소유길’이라 이름 붙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행복’해야 하기 때문에 무소유다. 야트막한 오솔길이 걷는 사람에게 부담주지 않고, 오솔길 근처로 펼쳐진 편백 숲과 참나무 숲 덕에 고요함마저 스미는 길 위를 걷다보면, 이 길의 이름이 왜 ‘무소유’라 붙었는지 알만도 하다.

숲이 울창한 탓에 시원한 풍경을 보기는 어렵지만 삼림욕과 함께 머릿속 잡념을 씻어내고 ‘무소유’에 대해 사색하면서 마음 편안한 산길을 하염없이 걸으면 자연속의 스스로를 더욱 선명하게 만날 수 있다.

# 한라생태숲

 

한라생태숲은 제주시 5·16도로변 해발 600고지 일대 펼쳐진 숲이다. 공원의 크기가 무려 58만 여 평, 18개의 숲으로 구성된 이 숲은 1970년대 초부터 1995년까지 개인에게 임대돼 마소의 방목지로 사용했던 곳을 원래의 숲으로 복원하고 조성한 곳이다.

가‘생태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난대성 식물에서부터 한라산 고산식물까지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 생태숲은 단풍나무, 벚나무, 구상나무, 참꽃나무숲 등 13개의 테마숲과 생태숲 전체의 축소판인 암석원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한라생태숲에는 자연 그대로를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숫모르숲길’이 마련돼 있다. 숫모르란 ‘숯을 굽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이 일대를 말하는 옛 지명이다. 숲길은 4.2km의 숫모르숲길, 8km의 숫모르편백숲길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생태숲을 둘러 만들어진 길이기 때문에 생태숲 관람은 따로 해야 한다.

특히 숫모르편백숲길은 다양한 숲 체험과 오름 탐방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길을 걷는 동안 셋개오리와 진물굼부리, 큰개오리와 족은개오리 옆을 지난다. 샛개오리오름을 제외하면 큰 경사가 없어 다소 긴 코스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여며가며 충분히 걸을 만하다.

 

# 경의선 숲길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한번쯤은 들어봤을 경의선.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 발자취가 담긴 경의선 철길이 도심 속 녹색길로 거듭났다. 경의선 숲길은 지난 2016년 6.3km 전 구간이 완공됐다.

이 길은 경의선과 공항철도가 지하에 건설되면서 그 위쪽으로 조성된 도심 속 공원으로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이어지는 공원구간(4.4km)과, 경의선과 공항철도 역사 구간(1.9km)로 이뤄져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자연과 도시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숲길은 도로 때문에 전 구간이 이어져 있지는 않다. 마포구 염리동과 대흥동 일대를 가로지르는 대흥동 구간, 연남동, 새창고개 구간, 창천동 구간, 신수동 구간, 원효로 구간 등이 구역별로 조성됐다.

경의선 숲길을 거닐기 위해서는 서울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과 가좌역을 이용하면 된다. 어느 역을 이용하든 숲길로 진입할 수 있다. 숲길을 따라 걸으면 경의선이 원래 마포와 용산을 오가는 교통로였던만큼 이제는 쓰지 않는 폐 철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깨끗하게 관리된 산책로와 휴식의 공간이 만들어진 곳에서 녹슨 기찻길만이 세월을 느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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