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이런 노래 가사가 있다. 꽃은 보면 볼수록 예쁘고 향기 좋고 빛깔마저 곱다. 나는 십 오륙 년 동안 꽃집을 운영하며 내 등에 짊어지지도 못할 만큼의 많은 꽃을 손님들께 선물했다.

나는 수천, 수만 송이의 카네이션을 이 세상 어버이들 가슴에 달아줬고, 향긋한 프리지아로 졸업식과 입학식을 축하했으며, 화사한 장미는 결혼기념일, 생일 등 사람들의 모든 행복한 날을 함께 했다. 내가 건네는 꽃을 받으며 항상 고맙다는 인사와 흐뭇한 미소로 돌아서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삶의 보람도 찾았다.

아들과 딸은 어느새 내 가슴팍에 카네이션 한 송이 꽂아주는 것도 쑥스러워할 나이가 됐다. 올해 어버이날이었던가? 택배가 왔다는 말에 서둘러 집에 가보니 작년 가을에 일본으로 유학 간 아들 녀석이 보낸 빨간 카네이션 두 송이와 감사 편지였다.

편지와 꽃을 받아들고 감격해 눈물방울이 흐르는 것을 보고 새삼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그랬다. 일본이 그리 멀지도 않지만 고국이 그립고 부모형제의 소중함을 알아챈 아들이 기특하기도 했다. 꽃을 받고 보니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무작정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조금 배운 일본어가 전부인 나는 나리타공항에 내리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갑작스레 내린 결정으로 괜히 아들에게 민폐만 끼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 아들과의 만남은 반갑고 따뜻했다. 나는 신주쿠, 신오쿠보 등에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이곳저곳 많이 둘러봤다. 바쁘게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가족을 위해 장을 보는 사람들, 등하교하는 학생들, 또 꽃을 사는 사람들까지 일본이라고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일본에 있었던 날 중 하루는 하루 종일 세차게 비가 왔다. 여행하기 나빠 투덜거렸더니 다음날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아주 맑게 갠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 위로 수줍게 살짝 웃는 새아씨 얼굴 같은 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모양이 똑같고 자연의 이치 또한 같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푸른 산과 풍요로운 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높은 하늘이 어디서나 우리를 감싸고 맑은 숨을 들이쉴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인생은 농부가 갈아놓은 쟁기 흙 사이 물고랑에 떠다니는 우렁이 깍지와도 같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삶을 살아내며 후손을 남긴 뒤 어미는 껍질만 남아 둥둥 떠다니는 우렁이 깍지.

비 갠 하늘에 뭉게구름 가듯, 우리 인생도 하얀 뭉게구름처럼 빠르고 허무하게 왔다가 가버린다. 찬란한 기회도 행복도 흘러가는 뭉게구름처럼 흘러 지나가버린다. 젊음과 행복 모든 것을 하늘 위 구름 잡듯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오늘도 깨끗한 깍지를 남기기 위한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수영 전북 익산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참전유공자인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 두 분을 모시면서 나라사랑에 대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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