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위 선생은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해 평양 숭실학당을 졸업한 후 19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한인 최초로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이후 선생은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 전도사가 됐고, 목사 인수를 받은 후부터 교포사회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13년 미주한인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에 취임해 브라이언 국무장관에게 ‘미주 한인이 한일 강제병합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했으므로 일본인과 국적을 구분해 줄 것’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선생은 이후 1915년부터는 ‘신한민보’ 주필로 활동하며 한글식자기를 발명해 미주한인사회의 출판문화를 향상시켰다. 선생은 1919년 3월 22일자 신한민보를 통해 3·1독립만세운동과 그 이후 국내 상황을 미국 동포들에게 알려 서로 단결하고 합심해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임시정부가 대미외교업무 수행을 위해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한 선생은 광복을 맞지 못하고 1928년 6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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