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게 펼쳐진 묘역과 5·18민중항쟁추모탑. 뒤로 유영봉안소가 보인다.

 ‘오월’ ‘광주’는 이미 보통명사가 됐다. 신록이 우거진 오월, 봄꽃 만발한 광주는 이제 ‘5·18민주화운동’으로 기억된다. 민주화운동이든, 항쟁이든, 어떻게 불리든 ‘5월 광주’는 이제 1980년 우리 현대사의 한 자리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인권과 정의의 나라를 위해 큰 길을 열어준 역사의 변곡점이 됐다. 어두웠던 과거를 씻어내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가는 새 봄을 맞아 ‘5·18민주묘지’는 다시 봄기운의 한 가운데 섰다. 역사는 역사가 됐지만, 사람은 살아 다시 역사를 찾는다.

매년 5·18 즈음이 되면, 민주묘지를 향해 이어진 차로에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진다. 그 하얗다 못해 빛나는 꽃들은, 고인들의 혼인 듯 그이들의 의지인 듯 손에 손을 잡고, 끝없이 망월동으로 망월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꽃을 머리에 이듯 아래를 걷는 소복의 유족들은 5·18이 아직 살아있는 이야기임을, 역사에 살아 우리 민주주의의 큰 동력으로 역할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5월 ‘광주’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계절

5월을 한 달여 남긴 이곳은 신록이다. 막 지난 겨울과 동장군을 밀어내고, 다시는 겨울이 올 수 없음을 선언하듯 잎과 가지들이 피어난다.

민주묘지를 들어서면 높이 40미터에 이르는 ‘5·18민중항쟁추모탑’을 만난다. 탑 중앙의 난형환조는 당시 광주 희생자의 혼령이 새 생명으로 부활하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동학농민전쟁 이래 겨레의 가슴속에 장강대하로 흐르고 있던 만족의 자주적 발전과 민주화의 열망이 장엄하게 분출한 사건이다. 1980년. 금남로에 수십만 명씩 모여 민주화를 외치던 광주·전남 시도민들은 정권을 찬탈하려는 군사반란 집단의 무도한 폭거에 맨주먹과 몽둥이로 맞서다가 끝내 총칼을 들고 온몸을 바쳐 싸웠다.(중략) 이곳에는 그 거록한 싸움터에서 산화한 분들과 그때 같이 싸웠던 분들이 잠들어 있다.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피를 말리며 분노하던 온 겨레의 정신도 함께 깃들어 민족의 영원한 화합과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며 저 높은 탑 위에서 활화산으로 불타고 있다.”

시인 송기숙 선생이 쓴 탑명에는 광주의 정신과 그 염원이 응축되어 담겨 있다. 탑 좌우로 선 대동세상군상과 무장항쟁군상은 각각 슬픔을 딛고 승리를 노래하는 ‘대동세상’을 노래하는 시민들과, 불의에 저항하던 당시 시민군들의 모습을 각각 생생하게 담고 있다. 연두빛에 가까운 대형 조각은 어쩌면 미처 살아나지 못한 당시 시민들의 회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추모탑을 돌아 묘역으로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진 봉분들. 구름 가득한 하늘조차 그들의 넋을 위로하듯 낮게 깔려 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던 그대/ 많은 이에게 애정을 베풀고/ 사랑을 받았던 당신/ 그대 나비되어/ 내 가슴에 앉으소서”

“어떤 고난과 유혹에도 굳건히 올바른 길만을 고집하신 당신 이제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누리소서 통한의 그리움을 삼키며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을 우리 마음에 모시겠습니다”

“여보! 5·18민주화 성화가 방방곡곡에 메아리치는데 당신은 무등산 산록 이곳 5·18묘지에 영면하게 되었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다시 맞는 5월, 민주주의의 동력

비문 하나하나에 실린 사연과 애정과 안타까움이 되살아 오른다. 언제나 보는 이의 소름을 돋게 하는, 그 이야기들은 아직도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무명열사의 묘. 이름도 없다. 사진도 없다. 하얀 국화꽃만이 우리가 그를 보냈음을 말해줄 뿐이다. “민주의 중음신으로 떠돌던 넋이여/ 영원한 평화의 생명으로 부활하라.” 두줄의 비문이 그의 어깨에 얹혀있다.

행방불명자 묘역. 당시 행불된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유해를 찾지 못해 묘비만 세워져 있다. 그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떠도는가. 우리 민주주의의 오늘을 보고 계신가.

묘역 오른쪽으로는 유영봉안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는 앳된 5살 남짓의 소년에서부터, 교복차림의 남고생, 단발머리에 하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 노동자의 투박한 얼굴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 사진 없이 무궁화 꽃으로 내려앉은 이들까지 영정은 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유영봉안소 내부. 5·18 희생자 영정사진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왼쪽에 세워진 추모관은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남은 이들의 깊은 눈길에서 만나는 진실, 당시의 현장을 뜨겁게 증언하는 유품은 다시 아픔으로 다가온다. 멈춰진 시계와 당시의 시신을 감쌌던 비닐, 희생자의 관을 덮었던 피 묻은 태극기….

이곳에는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장정의 역사가 오롯이 기록돼 있다. 2011년 유네스코에 의해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과정까지. 그렇게 광주는 우리의 역사이자, 세계 민주화운동의 기록유산으로 남게 됐다.

다시 5월을 맞는 오늘 5·18은 우리 가슴에, 그리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민주주의의 커다란 동력이 된다. 그리고 남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담겨 한반도를 민주의 세상으로, 통일로 이끄는 심장으로 뛰고 있다.

 

▲ 추모관을 찾은 아빠와 어린 자녀가 당시 현장 전시물을 보고 있다.

 

 

▲ 추모관에 전시된 한 장의 사진. 당시 전남도청과 분수대, 금남로를 가득메웠던 시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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