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산 인수봉 아래 4월학생기념탑과 만장 등이 세워진 국립4·19민주묘지 전경.

 북한산 인수봉을 배경으로 우뚝 선 화강암의 기둥과 그 아래 새봄을 기다리며 누운 오래된 봉분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일으켜 세운 4월 혁명. 그 혁명의 주역들이 이곳에서 오늘의 민주 발전을 지키기라도 하듯 세월의 두께를 안은 채 잠든 곳,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국립 4·19묘지를 찾았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항거하며 186명의 희생과 6,0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던 4·19는 한동안 혁명으로도, 의거로도 불리지 못했다.

1993년 역사적 재평가를 받은 이래 공원묘지로 관리되던 이곳은 1995년 성역화 사업 이후 국립묘지로 승격했고, 2005년에 비로소 오늘의 ‘국립4·19민주묘지’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됐다.

4·19혁명 당시 사상자와 건국포장을 받은 분 등 408기가 안장돼 있는 민주묘지는 4·19혁명 기념관과 4월학생혁명기념탑, 수호예찬의 비, 자유의 투사, 정의의 불꽃, 민주의 뿌리 등 4·19정신을 나타내는 여러 조형물이 조화를 이루며 다시 찾아오는 4월을 맞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편안하게 이어지는 진입로를 돌아서면 민주묘지 중앙에 우뚝 솟은 탑이 나타난다. 혁명 2년 후인 1962년 세운 4월학생기념탑이다.

 

▲ 4·19혁명 당시 암울했던 시대상황과 자유에 대한 영원,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파노라마로 표현한 부조가 그날의 함성을 그리고 있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 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의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비문 전문)

짧고 강렬한 비문은 지금도 살아 숨쉬는 ‘민주선언’처럼 느껴진다. 기념탑 양 옆으로 4·19혁명의 과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부조가 펼쳐져 있다.

기념탑 뒤로 돌아 들어가면 묘역이 나타난다. 묘비 전면에는 혁명 당시 재학 중이었던 학교와 이름이 새겨져 있다. 60년을 훌쩍 넘긴 세월만큼 풍상을 이겨낸 묘비의 글씨체는 천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혁명의 선발에 섰던 대학생들의 묘비가 주로 보였지만 곳곳에 ‘중학교’ ‘고등학교’가 새겨진 묘비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기념탑 뒤쪽에 위치한 민주열사들이 잠든 봉분과 묘비.

참배를 겸해 산책 나온 주민들이 묘비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

“중학생인 우리 아들 나이의 학생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니 놀랍고 안타깝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거야”

묘역을 지나 묘역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유영봉안소는 희생자들에 대한 참배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묘역 오른쪽 4·19혁명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 입구에서는 정의를 위해 목숨 던진 186명의 민주열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 유영봉안소 안으로 들어서면 참배할 수 있는 제단과 민주열사들의 사진이 마련돼 있다.

전시관은 4·19혁명의 배경과 내용을 디오라마, 영상, 조형물 등으로 재현해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또한 4·19혁명이 일궈낸 성과와 혁명에 참가한 시민의 힘이 어떻게 부정 독재를 침몰시켰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관 한 쪽에는 4·19혁명의 기폭제가 됐던 김주열 열사의 사진이 놓였다.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최루탄을 맞고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 열사는 4·19혁명의 상징이다.

이를 계기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 부모형제를 잃은 초등학생들까지 시위에 참여하며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게 했고, 마침내 혁명의 완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층으로 올라서면 4·19혁명 당시의 흔적들과 4·19혁명 당시 희생된 민주열사를 추모하며 혁명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 조성돼 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4·19혁명에 참가했던 한성여중 2학년 진영숙 학생의 유서 내용 중)

4·19혁명은 대한민국 역사에 자유와 민주, 정의를 향한 시민들의 의지를 깊이 새겼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정으로 요동쳤다. 오늘 우리가 가진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소중한 불씨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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