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위문품 전달 차 김 어르신 댁을 찾은 적이 있다. 어르신은 활짝 웃눈 얼굴로 나를 반기면서 나의 두 손을 잡자마자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내가 지청으로 전화를 할 참이었어. 저거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벌써 저세상으로 갔을 거야.”

어르신이 가리키는 것은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양평여성의용소방대와 양평군해병대전우회가 함께 달아준 연기감지기였다. 어르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날의 기억을 얘기했다.

얼마 전에 빨래를 올려놓고 어르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한다. 어디선가 자꾸 매미가 울어서 깼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주방으로 가보니 올려놓은 빨래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그걸 감지한 연기감지기가 시끄럽게 울어대 그 소리에 깨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은 내가 처음 노후복지서비스를 위해 방문했을 때 화난 얼굴로 자신은 그런 것 필요 없다며,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것도 싫고 누가 간섭하는 것도 싫다며, 오지 말라고 극구 서비스 제공을 거절하셨던 분이다. 나는 계속된 설득을 통해 어르신에게 노후복지서비스를 제공했고, 보훈섬김이를 통해 안부 차 자주 댁에 방문함과 동시에 심부름과 가사업무를 도와주면서 어르신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갔다.

그 후 마음을 연 어르신 댁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화재예방 차원에서 연기감지기와 소화기를 설치하게 됐고, 그 연기감지기가 바로 어르신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우리 경기북부보훈지청으로서는 고령인 국가유공자가 기억력 감퇴 등 건강상의 이유로 화재에 많이 노출된 점 등을 해결하기 위해 소방업체와 협력하여 연기감지기와 소화기 설치 등의 각종 지원을 확대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보훈처는 2005년부터 이동보훈복지제도를 도입해 자녀에 의한 부양이 어려운 저소득 고령 국가유공자에게 보훈섬김이를 통해 매주 1~2회 일상생활을 도와드리고 있다. 지역사회단체와 협력해 위문품 지원과 정서 지원 등의 각종 지원도 함께해 이 서비스의 폭을 넓히고 있다.

보훈섬김이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 보훈섬김이 지원이 깨끗하고 평온한 환경에서 국가유공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상당부분 기여하는 것은 물론, 보훈섬김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생각하는 등 정서적인 안정감을 드리는 효과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25전쟁을 겪었던 우리 역사에서 많은 노인들은 전쟁을 겪었던 국가유공자이며, 특히 경기북부지역은 휴전선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참전유공자의 숫자도 6만 명이 넘는다. 한번뿐인 청춘을 대한민국을 위해 바치고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를 누비던 참전유공자들은 이제 대부분 80대 후반을 훌쩍 넘겨 몸도 마음도 많이 노쇠해진 상태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보답할 차례가 됐다.

앞서 소개한 어르신처럼 사회와 담을 쌓고 누군가의 호의를 차갑게 거절했던 그분들이 국가보훈처의 작은 관심과 보훈섬김이들의 따뜻한 봉사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듯이, 이제 우리가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듯 그들을 위해 세심하게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 그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처럼.

요즘은 국가유공자분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나면 자꾸만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 그분들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기에. 그래서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따뜻한 보훈’의 길에 내가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국가를 위해 청춘을 헌신한 이들의 마음에 진정한 봄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오혜령, 경기북부보훈지청 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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