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지 왼편에 세워진 유관순 열사의 동상. 

쪽 곧은 열사의 길 너머로 유관순 열사의 품이 보인다.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유 열사가 나고 자랐으며, 99년 전 3·1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던 천안시 병천면에 조성된 그의 기념관이다. 추모각 위로 비친 햇살에 이제 막 녹기 시작한 눈이 성큼 가까워진 봄과 자리를 바꿀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 유 열사도 이곳에서 다가올 3·1절 후손들의 만세소리를 기다릴 터다. 기미년 3월 1일, 그때의 그 의기는 지금 이곳에 우뚝 솟아 후손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기념관은 유 열사가 3·1만세운동을 준비하며 횃불을 올렸던 매봉산 기슭에 마련돼 그의 정신과 혼을 모셨다. 열사의 길 끝에 1919년 3월 1일의 횃불을 상징하는 주조물이 3·1만세운동의 열기를 보여준다. 횃불 뒤로는 만세운동을 펼쳤던 아우내 장터를 연상시키는 널찍한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곳을 감싸 안듯이 자리 잡은 유 열사 사적지는 마치 그가 후손들을 인자하게 굽어보는 것만 같다.

광장 오른편에는 유 열사 동상이 서 있는데, 태극기를 손에 든 앳된 소녀가 분연히 일어나 광장의 군중을 이끌고 일제를 향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떠올라 절로 숙연해진다.

 

100주년 기념관 열사 부조 ‘선명’

동상을 지나 위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추모각이 나온다. 추모각 뒤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유 열사의 초혼묘(유해 없는 묘)도 마련돼 있다. 추모각은 일제 강점기 유해가 유실되는 아픔에 그의 영혼이라도 추모하기 위해 1972년 건립했고, 1986년 8월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했다. 추모각에는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매년 9월 28일 순국일에 맞춰 추모제가 열린다.

 

▲ 유관순열사기념관 앞 타임캡슐에는 유 열사의 자료 등이 봉인돼 2102년 4월 1일 개봉한다.
▲ 유관순열사기념관에 입장하면 3·1만세운동을 그린 청동부조가 그날의 함성을 들려준다.

추모각에 참배하고 내려와 유 열사의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지난 2003년 유 열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관된 곳이다. 아담한 전시관의 입구에는 3·1만세운동의 정신을 상징하는 부조가 관람객을 맞으며 그날의 힘찬 함성을 들려준다.

그 옆으로 유 열사 집안의 가계도가 눈에 띈다. 그의 부친 유중권 선생은 사재를 털어 교육운동을 전개한 계몽운동가였다. 오빠인 유우석 선생 또한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고, 동생의 죽음 후에도 활발히 항일투쟁을 벌였다. 숙부, 사촌형제, 조카 등 9명이 애국·애족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다.

전시관에서는 또 유 열사의 출생에서 순국까지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호적 등본, 이화학당 입학증과 명예졸업증 등 생전의 기록들과 수형자 기록표, 재판기록문,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을 재현한 모형 등 독립운동의 흔적이 담긴 전시물이 짧지만 불꽃같은 업적을 남긴 그의 삶을 대변해 준다.

유 열사는 미국인 선교사 ‘샤프 여사’의 주선으로 이화학당에 수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신앙심을 키우고 틈나는 대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했으며, 이것은 훗날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할 수 있었던 정신적 바탕이 됐다.

 

열사 생가지 터 체온 느껴지는 듯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후 휴교령이 내려지자 열사는 고향인 병천으로 내려와 병천, 목천, 천안, 진성 등지의 학교와 유림을 찾아다니며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사일로 정한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 3,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고, 유 열사는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며 자주 독립 쟁취를 위한 연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아우내 거리에 천지를 진동시키는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일본 헌병들의 무차별 총격이 시작됐고, 이날 유 열사는 부모님과 이웃을 잃고 그 자신은 체포됐다. 유 열사는 공주재판소로 넘겨져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어린 학생에게 내려진 중형은 유 열사가 만세운동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감 중에도 독립만세를 부르며 옥중 동료를 격려했고, 그때마다 당했던 매질과 고문 후유증으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20년 좁고 어두운 감방에서 순국했다. 투옥된 지 1년 반만의 일이다.

 

▲ 매봉산 뒷편에 복원된 유 열사 생가지.

유 열사의 추모각과 3·1운동을 알렸던 봉화대가 있는 매봉산 아랫자락에는 그의 생가지가 있다. 만세운동 당시 일제에 의해 전소된 것을 1991년에 복원한 것이다. 그가 형제들과 뛰어 놀았을 마당과 만세운동을 논의하고 손수 태극기를 그렸을 안채에서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라는 노랫말처럼 다섯 칸 남짓한 작은 초가집에서 그토록 큰 꿈과 열망을 키웠을 그가 더욱 생각나는 3월의 하늘이다. 곧 다가올 전국의 3·1절 함성이 여기서 벌써 출발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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