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념관을 들어서자 만나게 되는 안중근의사 좌상.

남산 중턱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남쪽을 향해 들어선 반투명 건물. 맨 왼쪽의 건물 외벽에 ‘安重根(안중근)’ 석자가 조금은 흐릿하게 비쳐 나온다. 안중근의사기념관. 1970년 현재의 자리에 있던 기념관은 2007년부터 이뤄진 국민성금 모금을 바탕으로 오늘의 신축 기념관을 개관하게 됐다. 전시에서 연구, 교육까지 기능을 제대로 갖춘 기념관은 이제 후손의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우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의사의 뜻을 오롯이 받드는 중심으로 우뚝 서있다.

의거 3일전. 안중근의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하고 그 마음을 다잡으며 붓을 들었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에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며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우니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개히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를 줄을 헤아렸으리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라/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만세 대한동포로다” (‘장부가’ 전문)

그의 원흉처단을 향한 결기가 담긴 곳이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그 단단했던 애국혼이 이곳, 남산 서울 한복판에서 이 땅을 되찾으려 했던 동지들의 의지와 함께 서 있다.

 

▲ 단지동맹 12인을 상징하는 기념관 외부 모습.

기념관은 안 의사의 단지동맹을 상징하는 12기둥 형태로 건립됐다. 단지동맹은 손가락을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함께 쓰면서 나라사랑의 단심을 확인했던 모임.

남산 기념관 인근에는 남산도서관과 접한 넓은 공간에 안 의사의 붓글씨로 새겨진 수많은 석물들이 흩어져 있다. 제각각의 모양인 석물들은 이곳을 찾는 시민과 학생들에게 한 줄 한 줄 그의 뜻을 새겨 전하는 듯하다. 기념관 내부로 진입하는 길 역시 의사의 생생한 목소리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어 관람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지하 1층. 기념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게 안중근의사의 흰색 좌상. 두루마리를 입은 모습 뒤로는 배경으로 한자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태극기가 걸려 있다. 핏빛 글씨는 단지동맹 11인과 함께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하고 쓴 혈서다. 참배홀 옆으로는 의사의 손바닥 지장과 부조로 만든 상징공간과 함께 그의 출생과 성장을 다룬 전시물, 항일 독립운동의 명가로 15명이 서훈을 받은 의사 가문에 대한 설명을 만날 수 있다. 안 의사에 추서된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도 전시돼 있다.

1층으로 올라서면 안중근의사 활동지도를 시작으로 의사의 활동이 입체적으로 분석, 전시되고 있다. 천주교 신앙인으로 천주교 전파활동을 했던 개인활동기에서부터 을사늑약과 해외망명계획,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한 교육운동, 국채보상운동 참여 등이 눈길을 끈다.

 

▲ 기념관 내부의 전시물 모습.

1907년 망명을 떠난 이후에 연해주에서 한인결속을 위해 활동했던 내용,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의병투쟁, 1909년 동의단지회까지, 의사의 치열했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2층 제3전시실로 들어서면 하얼빈의거 당시 기차 굉음과 의사의 손을 떠나는 총알, 그리고 쓰러지는 이토 히로부미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당시 찍힌 실제 영상과 음향이 현장처럼 보인 후, 밝게 불이 들어오면서 이토 처단 순간의 장면을 재현한 설치물이 눈앞에 다가선다. 당당하게 권총을 들고 선 안 의사와 총을 맞고 쓰러지기 직전의 이토 히로부미. 일본 제국주의는 당시 그를 법정에서 세워 단죄했지만, 오늘의 역사는 그를 의로운 투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끌어낸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평가한다.

 

▲ 오른쪽은 관람 후 학생들이 쓴 편지와 소감문.

이어지는 법정투쟁과 옥중에서의 유필과 동양평화론 집필, 순국까지 많은 게시물들이 그가 우리 독립운동의 방향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이를 위한 체험전시실과 의사의 뜻을 마지막으로 다시 기리는 추모실을 거치면 안 의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들어온다.

“당신이 아니었더면 민족의 의기를/ 누가 천하에 드러냈을까/ 당신이 아니었더면 하늘의 뜻을/ 누가 대신하여 갚아줬을까// 세월은 말이 없지만/ 망각의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서 가지만// 그 뜻은 겨레의/ 피줄속에 살아있네/ 그 외침은 강산의/ 바람속에 남아있네”

조지훈 시인의 ‘안중근의사 찬(讚)’ 중

차가운 겨울 날씨를 맞으며 해 넘어가는 기념관을 나섰지만, 추모실에 박혀있던 시가 내내 가슴에서 여운을 울리고 있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