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면 선생은 1880년 함북 경흥의 빈농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선생은 생업을 잇기 위해 원산으로 이주했으며 당시 독립교회 선교사인 펜윅을 만나 기독교에 입문하고 선교사로 활동했다.

1907년 선생은 가족과 함께 훈춘으로 망명해 대한기독교회 소속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국내의 서북학회와 비밀결사 신민회 등에 가입했다.

1915년 대한기독회가 일제의 포교 규칙에 굴복하자 선생은 ‘대한성리교회’를 만들고 복음서를 판매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며 현해주와 만주지역 독립운동 세력과 연대했다.

1922년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청년동맹회를 조직하고 ‘한인청년’이라는 잡지를 출판했다. 192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총장 대리로 임명돼 독립운동 자금모집과 소련 당국에 대한 자금지원요청 교섭을 맡았으나 실패하자 사임했다.

이후 선생은 사회주의자동맹을 조직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갈라선 독립운동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노력했으나 1927년 장제스가 사회주의를 탄압하자 중국을 떠나 연해주로 돌아왔다.

선생은 항일무장투쟁을 독립군 부대의 활동에 필요한 인적·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서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지도자였으며, 일관되게 제국주의 타도와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해 힘을 기울인 반제국주의 전선의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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