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계절이다. 눈은 더럽거나 깨끗한 곳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위에 소복하게 쌓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리네 세태를 잠시나마 반성하게 한다. 세상을 골고루 덮은 너그러운 눈은 잿빛 대지를 밝혀 추위와 외로움을 잊게 한다. 우리들은 겨울이 오면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면서도 첫 눈이 오면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함박눈이 오는 날에는 눈밭에 구르기를 마다 않으며 ‘눈 사랑’이 끝이 없다. 겨울이 포근한 그곳, 강원도의 설원으로 달려가 본다.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쓸모가 많다. 오랫동안 썩지 않아 기록용으로 유용해 국보 207호 천마도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 또한 옛날에는 결혼식 날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신하기도 했다. 흔히 ‘화촉을 밝힌다’는 말을 쓰는데, 여기서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가 사랑받는 이유는 이처럼 껍질부터 목재까지 고른 쓸모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답고 웅장한 그 자태 때문이다. 특히 한겨울 고고한 선비처럼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곧게 서 있는 자작나무 숲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 풍경이 압도적이다.

고요한 숲길에 사각사각 눈을 밟으며 걷다 숨이 가빠질 무렵 고개를 들면 자작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가 하얀 눈 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모습은 북유럽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만큼 낯설고 환상적인 풍경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풍광을 품은 자작나무 숲은 그 자체로도 휴식이다. ‘자연이 주는 치유’가 바로 이런 것일까. 그 숲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지만, 돌아 나올 때는 고개를 들어 백옥 같은 자태의 자작나무가 지조를 지키며 꼿꼿하게 서서 메우고 있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말길.

 

평창군 제왕산 능경봉

 

덕유산 상고대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강원도 강릉과 평창에 걸쳐 있는 제왕산 능경봉은 그야말로 숨겨진 설국이다. 능경봉은 근처의 대관령, 선자령길 등의 유명세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눈 길 명소’다.

능경봉으로 가는 길은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짧은 등산로와 닭목재에서 가는 긴 등산로가 있다. 대관령에서 출발하는 길은 거리가 짧아 가족단위 등산로로 인기가 많다.

눈이 푹신하게 쌓인 길은 첫 발자국을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눈길을 걷는 것이 쉽지 않다.

입김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찬 기운을 이기고 걷다보면 속살을 드러낸 겨울 산이 앙상한 가지를 아름다운 눈꽃으로 숨기고 이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온통 눈과 햇살만으로 가득한 산길을 참아내고 나면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정상을 스치는 바람을 끌어안고 고개를 돌리면 멀리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선 선자령 능선이 보인다. 강릉 시내와 동해를 눈에 담는다. 날이 맑은 날이면 울릉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

 

겨울이 오면 대관령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설원의 양떼목장은 코끝 시린 추위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겨울이 오면 녹색 잔디 대신 반짝이는 하얀 눈밭으로 변하는 양떼목장의 언덕은 발자국을 내기가 미안할 정도로 깨끗하고 매끈하다. 하얀 둔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칼바람이 뺨을 스쳐도 포근하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겨울답게 하는 설원이다.

겨울이라 언덕에 뛰어노는 양떼를 볼 수는 없지만 양 먹이주기 체험 등이 가능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하얀 설원과 대비돼 유난히 청명해 보이는 하늘은 마음속에 쌓인 걱정과 고민을 말끔히 씻어내려 준다. 부드러운 능선을 뒤덮은 설경이 동화 같은 풍경을 선사하고, 누구나 겨울왕국의 주인공인 듯 설레게 한다.

언덕을 사박사박 걷다보면 주변 나무들에 곱게 핀 눈꽃도 감상할 수 있다. 내릴 때도 쌓여 있어도 예쁜 눈은 특히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이 아름답다. 부드럽게 둥근 언덕을 겨울바람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갈라치면 나뭇가지마다 앉았던 눈꽃이 ‘사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삭막한 겨울 풍경과 한파를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역시 눈이다. 지친 마음을 눈밭에 모두 풀어놓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을 붙잡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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