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다음날 우리 공군의 이근석 대령 등 10명은 미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 인수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이 제의한 F-51 전투기 인수 조종사 선발조건은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탈 수 있는 조종사’였는데, 인수에 참여한 10명 중 자격을 갖춘 조종사로 김신 중령이 유일했다.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었던 김 중령은 통역과 함께 비행기에 대한 기초적 설명을 맡아 비행훈련 진행과 전투기 인수에 크게 기여했다. 단 한 번의 비행훈련 끝에 전투기를 인수해 7월 2일 귀국한 김 중령 등은 3일부터 바로 전투 출격해 묵호, 삼척지구와 영등포, 노량진 지구전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공격했다.

특히 제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재임할 때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했으나 실패한 승호리 철교 폭파임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 10km지점에 위치해 적 후방보급로의 요충지였다.

1, 2차 출격에도 임무에 실패하자 김 대령은 휘하 지휘관 참모와 전술적 논의를 통해 적의 극심한 대공포화 위협을 감수하면서 고도를 낮춰 폭탄을 투하하는 새로운 공격전술을 창안해 1952년 1월 15일 폭파임무를 완수했다.

 

* 지난호(제871호) 7면에 게재된 이달의 6·25전쟁영웅 박정모 ‘육군 대령’은 ‘해병대 대령’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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