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보 선생은 1859년(철종 10년) 9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908년 경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선생의 한약방은 한인독립운동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선생은 1909년 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민회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해 쇠락한 정부를 계승한 ‘임시정부’를 자임했으며, 청년돈의회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선생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며 현지 한인에 대한 교육 활동 등에 힘을 쏟았다.

1910년 8월에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병탄 반대 투쟁을 위해 조직된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했고, 1911년 권업회에 참가해 통신부장에 선임됐다. 선생이 주도한 권업회는 ‘권업신문’을 발행하는 등 러시아 지역 한인사회의 대표기구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압력 등에 의해 강제 해산 당했다.

이후 선생은 권업신문을 계승한 ‘한인신보’ 발기회 고문단장으로 활동하며 1918년 한민회 회장, 1919년 대한국민의회 상설의회 의원, 1919년 노인동맹단 단장으로 선출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선생의 행적은 1924년 3월까지 확인되나 이후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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