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봉룡 경감은 6·25전쟁 발발 당시 황해도 개성지역 철도경찰대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공세가 시작됐고, 적 정예 제1사단, 제6사단과 13대의 T-34전차의 집중 공세를 막아내지 못한 국군 제12연대는 김포반도로 철수해야 했다.

당시 개성경찰서 병력도 대대와 함께 철수했는데, 이때 감 경감이 지휘하는 철도경찰대 전 대원 50명은 본부를 사수하기로 결의하고 본부 주변의 요충지를 점거해 방어태세를 갖췄다.

개전 후 처음으로 조직적 저항을 받은 북한군은 철도경찰대의 완강한 저항에 다른 통로로 진출하던 5대의 전차까지 동원해 본부 건물을 포격하기 시작했다. 경찰대의 투지는 강했지만 우월한 자동화기와 대규모 병력, 전차까지 가세한 적을 막아내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북한군 전차의 포격으로 본부 건물이 파괴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감 경감과 대원들은 굴하지 않았다.

감 경감은 총탄이 부족하고 통신이 두절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전 대원의 결의를 가다듬고 선두에서 돌격을 지휘하다 동료 43명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이들의 분전은 전쟁 초기 북한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며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숭고한 희생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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