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1일 부산 유엔평화공원에서 열린 턴투워드부산 추모식에서 캠벨 에이시아 양이 참전용사들과 인사하며 활짝 웃고 있다.

지난달 11월 11일 부산유엔공원. 경건하고 엄숙한 추모의 공간 속에 천진한 미소로 묘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먼 곳에서 온 ‘파란 눈의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작은 소녀가 있다. 고사리 손으로 고맙다는 메시지를 깨알같이 적은 엽서를 건네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가 캐나다인인 캠벨 에이시아(9) 양은 ‘한국전쟁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초등부 대상을 받으면서 유엔참전용사, 국가보훈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지난 6월 국가보훈처 방한사업으로 초청된 미국 유엔참전용사들을 만나며 일등 민간외교관이 됐다.

‘턴투워드부산’을 위해 방한한 독일 의료지원단의 유일한 생존자 칼 하우저 씨는 행사가 열린 11일 오전 전우들의 묘비를 둘러보다 작은 소녀가 건넨 엽서를 받아 들고 뜨겁게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캠벨 양을 꼭 안아주고는 돌아섰다.

“지난해 공모전 입상으로 작년에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의 반호이츠 부대에 방문했어요. 그때 참전용사 할아버지하고 인사하면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만나기 어려운 할아버지들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답장을 기다리는 것이 제일 행복한 일이 됐어요.”

캠벨 양은 네덜란드로 위문방문이 결정됐을 때, 한복 대신 군복을 준비해 비행기에 올랐다. 군복을 보면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이 옛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배려였다. 소녀의 마음 씀씀이는 적중했고, 함께 자리한 참전용사들은 6·25전쟁 당시를 상기하며 캠벨 양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은 어린 나이 때문에,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노년의 나이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한 영상을 참전용사 분들에게 보내드리기도 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너무 슬프지만, 지금 우리가 감사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때의 희생이 용감하고 고귀하고 헌신적이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참전용사 할아버지들과의 인연을 조근조근 풀어놓던 캠벨 양이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가장 기다려왔던 ‘허먼’ 할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많은 참전용사 분들과 소통하지만 허먼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캠벨이다. 허먼 역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는 주변 사람의 질문에 ‘My Family(내 가족이에요)’라고 답할 정도로 캠벨을 아낀다고.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허먼은 방한 첫 날부터 캠벨을 숙소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둘 사이의 우정이 깊다. 특히 이번 방한에는 소장하고 있던 6·25전쟁 당시의 사진과 직접 쓴 일지 등을 가지고 와 캠벨에게 그때의 삶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길 마다하지 않았다.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가 새로운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9살 난 소녀지만 캠벨 양은 참전용사와의 교감으로 국군과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가슴으로 이해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캠벨 양의 꿈은 ‘가상현실건축가’다. “너무 연로하셨거나 아프신 분들은 한국에 오실 수도 없고, 여행을 가실 수도 없으니까, 그 분들을 위해 가상현실로 세계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편안하게 앉아서 원하는 곳으로 여행 다니실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꿈이고요. 아름다운 우리나라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참전용사들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 오후에 있을 유엔평화기념관 관람 안내까지 지원했다는 캠벨 양의 눈이 자리를 떠나는 참전용사의 뒤를 쫓는다. 엄마 손을 잡고 자리를 뜨는 모습이 영락없이 또래 친구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누구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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