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 문학코너에 마련된 ‘노벨문학상 수상작’에서 화제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가을을 맞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시리게 파란 하늘을 가리는 계절, 일찌감치 새봄을 준비하는 어린 잎새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 낙엽 한 장에 문득 눈길이 쏠렸을 때, 우리는 ‘순리대로 사는 것’에 관한 짧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가을은 글쓰기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 수상작과 최근 수상작을 통해 더 깊은 문학의 세계로 들어서보자.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2017년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계 영국작가로 현대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문체로 녹인 작품들로 주목받던 그가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가 1989년 발간한 ‘남아있는 나날’은 같은 해 맨부커상을 받으며 평단과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수작이다.

소설은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한 남자 스티븐스의 인생과, 그의 시선을 통해 근대와 현대가 교차되면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풀어낸다.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하는 여인과 아버지, 그리고 30년 넘게 모셔 온 달링턴 경에 관한 이야기를 축으로, 이 작품은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말해 준다.

스티븐스가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모셨던 주인은 ‘선량하고 명예를 중시할 뿐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어두웠기 때문에’ 나치에게 이용당했음이 밝혀진 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스티븐스와 달링턴 경의 관계는, 영국의 지나간 역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절대적 가치에 매달리는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2006년 수상자)

 

‘내 이름은 빨강’의 작가 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파묵은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인터네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 등을 받았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을 절묘하게 오늘이라는 시간에 풀어낸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는 구성으로, 역사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현대적 서사기법을 취하고 있다. 살해당한 시체, 여자 주인공 셰큐레, 남자 주인공 카라, 술탄의 밀서 제작을 지휘하며 서양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두 번째 희생자 에니시테, ‘나비’, ‘올리브’, ‘황새’라는 예명을 가진 세 명의 세밀화가는 물론, 금화, 나무, 죽음, 빨강(색), 악마, 그림 속 개까지 말을 한다.

표면적으로 살인범의 정체를 알아나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계속 읽어내려 가면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예술인지 갈등하는 예술가들의 고뇌, 쇠퇴기로 접어든 이슬람 회화 전통에 대한 그들의 비애, 한 여인을 향한 세 남자의 사랑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소설임을 알게 된다.

 

양철북- 귄터 그라스(1999년 수상자)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작가인 독일의 귄터 그라스는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국내에서 유명해졌다.

입담 좋기로 유명한 작가는 1959년 발간한 ‘양철북’에서 정신병원에 갇힌 화자 오스카의 회상을 통해 전쟁, 종교, 사랑 등 인간의 온갖 모습을 서술로 풀어냈다.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952년에서 1954년에 걸쳐 요양원에 수감된 오스카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현재의 시점과 오스카가 회상하는 1899년에서 1954년에 걸친 과거의 독일 역사가 이중적으로 교차하고 뒤섞이면서 줄거리가 진행된다.

작가는 어린애와 같은 작은 키 때문에 성인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성인의 지성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인공 오스카의 비인습적인 역할을 통해 도덕적, 종교적, 성적 터부를 무너뜨리고, 비뚤어진 그의 시각을 통해 전쟁과 전후시대의 독일의 현실을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깨는 오스카의 모습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나치 독일의 모습이며, 오스카의 유아적 혹은 불구적 모습은 역사의식과 책임감을 결여하고 있던 독일 소시민 계층의 자화상이자 나치즘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전후 독일의 모습이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