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덕 선생은 황해도 출생으로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망명해 대한통군부 총장, 대한통의부 부총장, 의군부 총장을 역임하며 만주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1910년대에 독립의군부가 와해되자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해 압록강을 넘어 남만주로 망명했고, 1922년 대한통군부 총장에 선임됐다. 이후 대한통의부 부총장으로 선임돼 이주한인사회를 복원하고 만주 한인의 삶을 지원했다. 그러나 통의부 내에서 이념과 노선의 갈등이 발생했고, 복벽주의 계열 인사들은 1923년 통의부를 이탈해 대한의군부를 조직해 선생을 총재로 추대했다.

1923년 여름 중국 남만주 화전현에서 독립운동 지도자 58명과 함께 만주독립운동계의 통일과 진로에 대해 논의해 ‘만몽신당’이 편제되고 선생은 비서라는 중책을 맡게 된다.

1924년 항일무장투쟁을 주된 노선으로 하는 참의부가 성립되자 선생은 자신의 제자와 부하들을 참의부에 가입시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1925년 3월 참의부 회의장소를 밀정 이죽파가 일제의 초산경찰대에 밀고해 일본경찰이 이곳을 기습 공격했고, 많은 참의부원들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생은 비통함에 젖어 제자 이수홍에게 독립군이 돼 자신의 의지를 이어줄 것을 당부하고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살아있을 면목이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결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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